한국일보

알렉산더 헤밀턴이 필요하다

2011-04-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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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의회가 간신히 2011회계년도 예산안에 합의해 연방정부 폐쇄사태는 모면했지만 이번엔 정부 부채 상한선을 놓고 격돌한다고 한다. 의회가 부채 상한선을 조정해 주지 않는다면 미국이 채무불이행 국가가 된다고 떠들썩하다.

이 ‘연방정부 폐쇄’란 생소한 단어에 놀라 이곳저곳 뒤져보던 중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소개해 본다.

1804년 7월11일 이른 아침, 안개 낀 강 저편으로 지금은 뉴욕의 마천루가 바라보이는 고급 주택가가 된 뉴저지의 허드슨 강변에서 결투가 벌어졌다.

방법은 두 사람이 서로 등을 지고 선후 앞으로 다섯 발자국씩 걸어가 10보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동시에 돌아서며 상대방에게 총을 쏘는 방식의 결투(pistol duel)였다.


요즈음 누군가가 이런 결투를 했다가는 폭행죄나 혹시 한 쪽이 총탄에 희생이라도 되었다면 당연히 살인죄에 해당되는 일이겠으나 그 당시에는 이런 식의 결투가, 용감한 남자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투의 당사자들인 두 신사의 이력이 눈에 띈다. 그들은 바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과, 다른 한 사람은 3대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 아래서 부통령으로 재직 중이던 애런 버이었다. 결과는 애런 버의 총탄에 맞은 해밀턴(49세)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즉 현직 부통령이 전직 재무장관을 총으로 쏴 죽인 것이다.

이 결투로 인해 미 독립전쟁 중 조지 워싱턴 사령관의 부관으로 함께 초대 대통령을 보필하여 미국의 독립을 이루어낸 동료였던 두 사람은 모두 비극적으로 삶을 끝내게 된 것이다. 아내와 일곱명의 자식을 빚더미에 남겨두고 죽은 해밀턴은 물론이고 그를 죽이고 프랑스로 도망을 간 당시의 부통령이었던 애런 버 역시 가정을 잃고, 정치생명이 끝났을 뿐 아니라 미국 역사상 최악의 부통령으로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

그러면 이들은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였을까? 두 사람 모두 조지 워싱턴과 뜻을 같이하는 ‘연방주의자’였으나 1800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연방주의자인 애런 버와 반연방주의자인 토마스 제퍼슨이 후보로 나섰는데 해밀턴은 같은 동료인 애런 버가 아닌 반연방주의자인 토마스 제퍼슨을 대통령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이유는 단지 애런 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선거에서 진 애런 버는 대통령이 아닌 부통령이 되고 만다. 해밀턴이 애런 버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가 권력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므로, 혹시 그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망할 위험이 있으니 정권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는데, 거기에서 끝내지 않고 4년 후 다시 뉴욕 주지사로 출마하려는 애런 버를 향해 해밀턴은 신문을 통해 비난을 퍼부었고 이에 분개한 애런 버가 신속한 사과를 요구했으나 거절을 당하자 결투를 신청한 것이다.

그런데 이 결투의 주인공인 해밀턴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의 한 사람이며 대통령이 아니었으면서도 미국 지폐에 초상화가 실릴 만큼, 건국 초 조지 워싱턴을 도와 미국이 지금과 같이 수퍼파워를 갖게 되는데 큰 공헌을 하였으며 미국 경제의 기본 틀을 마련한 사람이다.

제1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시절, 빚을 얻어 전쟁을 치러 독립을 한 미국의 첫 정부는 매우 허약했다. 국가의 재정은 비어 있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원도 빈약했다. 당연히 국가의 장래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나라가 오래 유지될 것인가를 불안해했다. 그러나 몇 년 후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는 미국이 강력하고 중요한 나라가 되기를 갈망한 해밀턴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는 워싱턴 대통령을 도와 헌법을 제정하고 해군을 창립하였는데, 해밀턴의 강한 주장으로 탄생한 미국의 해군은 세계 1, 2차 대전 등 여러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미국이 전 세계의 리더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재무부장관으로 재직했을 때 국립은행(US Mint)을 설립하여 미국의 교역과 금융의 기틀을 만들어 경제를 이끌게 하였다.

여러 가지 중에서도 해밀턴의 가장 큰 업적은 역시 미국이 경제적으로 신뢰도를 얻은 것이다.

미국의 경제에 정부가 개입하여 국민들을 설득하고 세금을 더 걷어서, 독립전쟁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 어마어마한 채무를 지고 있던 각 주(state)의 빚을 갚게 하고 재정을 안정시켰으며 동시에 연방정부의 힘을 키웠다.

한편 그 때까지 개인이든 국가이든 빚을 진다는 것에 무조건 부정적이었던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해밀턴은 어느 정도의 채무는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18세기 말 부족한 국가의 재정을 보충하기 위하여 미국의 중앙정부에서 유가증권, 곧 채권을 발행하는 등 국채에 대한 기초를 마련하기도 했다(현재 연방정부의 부채는 14조252억 달러이다).

그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이런 유능하고 먼 미래를 볼 줄 아는 해밀턴 같은 재무장관이 위기상황에 있는 현재의 미국에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213)272-1234


정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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