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에 진심을 담기

2011-04-1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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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가 끝나고 오랜만에 모임에 나갔다. 신생아를 둔 엄마에게 하는 당연한 인사겠지만 일부러 찾아와 아기를 보며 “아유 예뻐라!” 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도 모르게 우쭐해졌다. 간만의 나들이에, 건강한 아이를 낳은 엄마의 자만이 자제가 안 되었던 걸까. 나는 칭찬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우리 아기 예쁘지요?” 하며 응수를 했다.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그 중 한 분이 최근 자궁외 임신으로 수술을 받으셨단다. 그것도 오랫동안 원했던 아이라 상심이 무척 컸을 터였다. 같은 엄마로서, 여자로서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컸을지 짐작이 되는데, 나는 그 분 앞에서 내 아기 예쁘다며 자랑을 한 꼴이 되고 말았다.

한번은 친한 후배가 파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나머지 “결혼해 보니 화려한 싱글들이 부럽더라”며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라는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해놓고 나니 무슨 위로의 말이 이런가 싶었는데,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하기에는 말이 너무 앞선 듯 했고, 벌써 상대방의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이 읽히면서 온 몸에 식은땀이 났었다.


경우가 아주 없는 사람은 아닌데, 뇌가 늙는 것인지 뜻하지 않게 말실수를 하는 일이 종종 있다. 가끔은 힘든 일을 겪는 지인들에게 위로 한답시고 한 말이 전혀 위로가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칭찬을 들으면 겸손해 한답시고 애써 부인하다 정도가 지나쳐 어색해 질 때도 있다. 더러는 사람들 사이에 갑자기 흐르는 적막이 싫어 분위기 띄우자고 아무 말이나 하다 아무 말도 안 하니만 못한 상황이 되는 경우도 많다.

말을 할 때도 퇴고의 작업을 거쳐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면 실수를 조금 줄일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나는 생각하고 말을 하는 과정에서 말을 ‘잘’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진심’을 담는데 소홀해지게 되는 것 같다.

이해인 수녀가 추억하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말에 관한 에피소드다. 두 사람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 중일 때 추기경이 병실로 그를 불러 "수녀도 항암이라는 걸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명랑하게 "항암만 합니까, 방사선도 하는데" 했다. 그에 추기경은 ‘고통을 참아라’ ‘기도하라’고 말하는 대신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간결하게 위로했다고 한다.

"대단하다, 수녀."

그 한마디, 인간적인 위로가 이해인 수녀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추기경의 그 한마디 속에 모든 종교적인 의미와 가르침이 담겨 있었고, 덕이 깊은 사람일수록 그처럼 인간적인 말을 하는 것임을 그 날 깨달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글을 쓸 때처럼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말을 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겠지만, 내 말하는 속도에 뇌의 용량이 미치지 못해 현실상 무리가 있어 보이며, 그에 따른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차선의 방법은 말수를 좀 줄여 보는 것. 그저 한없이 수다스러운 내가 아니라 말수를 줄이고, 말에 조금이라도 내 진심을 담아 실수를 상쇄시키는 것이다.


지니 조 마케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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