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민사회의 부동산 에이젼트

2011-03-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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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중 칼럼

몇 해 전인가 TV에서 60대 중반의 부부가 은퇴 후에 필리핀으로 이민을 가서 살아가는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찍어 몇 회에 걸쳐 방송하는 것을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아직 한국에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장성한 자녀가 있는 부부인데도 외국에 나가 말년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에 놀라워했었고 또한, 그 곳의 생활도 흥미로워 우연히 보게 된 프로를 끝까지 봤던 게 기억난다.

그들이 이민을 결심했던 계기는, 여느 한국의 평균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몇십년 근무하던 직장을 그만 둘 때 받는 퇴직금으로는 앞으로 몇십년이 될지 모르는 은퇴 후의 생활비가 충당될 것 같지 않아 이리 저리 방법을 알아보던 중에 한국과 비교해서는 아주 적은 생활비로 충분히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필리핀 해변에 노후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며 공감되었던 면이 많았던 것이 그 곳에서의 생활이 조금 단조롭게 보이는 면이 있긴 했지만, 어쩌면 분주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우리 동포들이나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은퇴 후 이상형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닷가 가까운 곳에 작은 집을 한 채 마련하고 가정부와 운전수를 고용하여 살림을 맡겨 가사노동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일상을 지내는데, 이른 아침에 바다로 나가 밤새 잡아온 게와 생선을 배에서 직접 사오기도 하고, 주중에 서너 번은 캐디의 도움을 받아 골프를 치는데 골프장이 텅텅 비어 있어서 소위 말하는 ‘대통령 골프’ 라운딩을 즐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은 짧은 영어로나마 현지인들에게 한국말과 글을 가르치며 한류의 열풍 가운데 있는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고 부인은 가사를 돕는 어린 가정부를 학교에 보내며, 필요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이렇게 하므로 해서 서로 돕는 훈훈한 인간미도 보였었다.

그러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한국에서 방문 및 탐문하기 위해 오는 여러 친지들의 안내역할도 하는 것이었다.

그분들의 모습이 은퇴 후 삶을 위한 새로운 이민행태이긴 하지만 이 곳 미주로 이주하려거나 비슷한 생각을 갖고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안내역할을 하는 우리 부동산 에이전트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조국의 신장된 국력으로 인하여 세계 어디에서든지 인정받으며,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충실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이 이제는 은퇴 후를 위해 이민을 가고, 한편으로는 이민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미주 한인들의 이민역사도, 백여년 전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노동이민을 시초로 60, 70년대 소수의 특수층 이민이나 유학으로, 또는 국제결혼 등으로 이주가 시작되었으며, 본격적으로 이민이 시작된 70년대 말에서, 80년대로 이어져 가족초청 이민이 계속된 것이니 어느새 40여년이 훌쩍 지났다.


그때야 대부분 빈손으로 미국에 왔으니, 필자가 올 때도 법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한도가 한사람 앞에 미화 삼백불이었는데, 많은 경우 그 삼백불도 못 가져 온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맨손으로 와 각지로 흩어졌던 1세 이민자들이 기반을 다져 지금은 미국 각 지역에서 상권을 이루어 지역경제의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을 신문지상이나 여러 통계로,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직접 눈으로 보아 알고 있다.

이렇게 한인 커뮤니티가 성장, 발전하는 동안, 장사를 하기 위한 상점이든 사무를 보기 위한 건물이나 생산을 위한 공장이든, 어떤 경우에나 부동산 에이전트들의 도움이 필요했을 테니,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이민자들의 재산 증식에 일조하였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뿐인가 주택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에이전트의 경우엔 고객이 이사를 하려는 지역의 교통이나 학군, 편의시설 등을 비롯한 동네 정보에 밝아야 하므로 이민자들의 생활터전이나 생활환경에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었고, 실제로 바르고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야 하는 게 부동산업자들의 의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공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나 법을 익혀야 하는 직종이기도 하며, 절대로 적당히 라는 말이 통할 수 없는 직업이기도하다.

조금 극단적인 예가 될지 모르나 부동산 매매 후 분쟁이 생겨, 소송이 걸리고 재판정에 섰을 경우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이전트는 전문가로 인정되어, 매매의 경험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모든 사항을 전문가로서 정확히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잘못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상당히 심하게 책임추궁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고 정확히 일을 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 이민사회의 재산증식을 위한 어떤 일정 부분의 중책을 맡고 있고 돈을 버는 직업을 떠나 이민 온 우리 세대나 후세를 위해 무엇인가 공헌을 했다는 자부심도 갖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213)272-1234


정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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