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8개주 2,500마일… 미국판 ‘실크로드’

2011-02-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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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평식의 여행이야기

8개주 2,500마일… 미국판 ‘실크로드’

‘루트 66’은 미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리노이주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서부 개척사를 느낄 수 있다.

모든 여행을 길을 따라 이뤄진다. 오로지 대지의 길을 밟으며 혼자의 힘으로 진행하는 트래킹 여행에서, 뱃길 따라 힘껏 달려도 10분은 족히 걸릴 듯한 어마어마한 유람선을 타고 가야만 체험 가능한 알래스카 빙하크루즈 여행까지. 모든 여행은 길이 함께 한다. 대부분의 여행은 목적지와 목적지에서 이뤄지는 활동을 위해 계획된다. 조금은 색다르고 좀 더 의미 있는 여행을 원하신다면, 목적지로 닿게 해주는 길이 아닌 여행자제의 목적으로써 길을 다뤄보자.

■히스토릭 루트 66을 따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길을 꼽아보면 전형적인 지중해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말피타나 해변(The Amilfi Coast) 길, 스위스 마르티니와 이탈리아 아오스타 간 45마일을 연결하고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의 동쪽에 위치한 ‘짧지만 달콤한 길’이란 별칭을 가진 버나드 패스(Bernard Pass), 대자연을 벗 삼아 남아프리카의 야생동물과 함께 달리는 가든 루트(The Garden Route) 등을 꼽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도 이 길들 못지않게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도로가 있다. 196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존스타인 벡이 ‘분노의 포도’에서 ‘어머니의 길’(Mother Road)이라고 부른 ‘루트 66’이다. 미국인들에겐 ‘미국의 실크로드’라 불리고 미국 문학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문화의 도로이다.

▶66번 도로(Historic Route 66·1926~1970)

66번 도로는 시카고 레익 미시간에서 시작해 8개 주를 거쳐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 바닷가에 이르는 2,448여마일(3,940km) 대륙횡단 도로이다. ‘마더로드’(Mother Road), ‘메인 스트릿’(Main Street), ‘블러디 66’(Bloody 66) 등으로 불리며 ‘길’ 자체의 대명사란 의미로 ‘더 루트’(The Route)라 불릴 만큼 미국인에게 사랑 받는 도로이다.

1926년에 개통된 미국 최초로 동서를 잇는 도로이나 고속도로가 생겨나면서 이제는 ‘히스토릭 루트 66’이란 이름으로 남겨진 채 지도상에도 표시되지 않는 도로가 되었지만 대공황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 길을 따라 서부로 이동했기에 역사적인 의미가 크고 엘비스 프레슬리, 냉킷 콜, 폴 앵카, 밥 딜런, 척 베리 등 수 많은 가수들이 이 길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할 만큼 66번 도로는 여전히 특별하다.

문화, 예술,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일리노이, 미주리, 캔사스, 오클라호마,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주 등 7개 주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캘리포니아주는 문화유산 지정 추진단계에 있다.

오늘날 66번 길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구간은 애리조나주에 남아 있는 오리지널 66번 도로이다.


홀브룩에서 오트맨까지 이어지는 이 도로는 총길이가 약 400마일이니 천천히 즐겨보자.

1년 내내 아무 때나 이 길을 달릴 수 있지만 기온이 쾌적한 늦봄이나 초가을이 좋다. 특히 어린 시절 즐겨본 서부영화를 그리는 사람들에겐 풍요로운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이 길에 놓인 홀브룩, 플랙스태프, 윌리엄스 같은 도시의 중심가에는 지금도 그 시절 모텔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윌리엄스를 지나면 원래의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오늘날의 I-40도로로 바뀌고, 피치 스프링스와 해크 베리 같은 작은 마을들로 이어진다. 단, ‘오리지널 66번 도로’는 현재 지도에 나와 있지 않으니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자.
관련 정보는 http:// historic66. com/ arizona/에서 얻을 수 있다.


새롭게 태어난 고스트타운 ‘오트맨’


폐허된 광산촌 개척시대 풍물재현

서부 개척시대, 금광이나 은광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나돌면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고 이들을 상대로 한 식당과 술집 등이 생겨났다고 한다. 금은 맥이 발견된 곳에는 어김없이 총질을 일삼는 무법자들이 하나 둘씩 몰려들었고 이들을 쫓는 보안관의 보호아래 상점, 학교, 병원, 교회 등이 생겨나면서 마을의 모습을 갖췄다.

하지만 광물이 고갈되면서 정착민들과 떠돌이들이 하나 둘씩 마을을 등지게 되고 이렇게 해서 ‘고스트 타운’(ghost town)이 만들어진다. 고스트 타운은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뉴멕시코, 애리조나, 유타 등의 서부 일대를 포함하면 1,000군데가 넘는다.

오리지널 66번 도로 끝, 애리조나 블랙산맥에는 금광도시 오트맨이 있다. 이 곳 역시 광물이 고갈된 고스트 타운이지만 다른 고스트 타운과 달리 한국의 민속촌처럼 옛 모습을 재현하는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다.

폐허가 된 광산, 식당, 술집 등이 서부개척시절 그대로 보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무법자, 보안관 그리고 술집 작부 등 당시 마을을 일궈냈던 사람들의 복장을 하고 어투, 행동거지 하나하나까지도 그 시절 그때처럼 하는 사람들이 마을 곳곳을 채우고 있다.

과거 이곳에서 펼쳐졌을 수많은 ‘공포의 총격전’은 이제는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행복한 총격전’이 되어 있다. 옛날 서부식 총격전이 간간이 마을 곳곳에서 펼쳐진다. 오트맨은 일명 ‘야생당나귀의 마을’로 불리는데 거리 가득한 서부시대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뒤로 다가와 관광객의 가방에 코를 가져다 대는 당나귀를 만날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여기저기에서 당나귀와 당나귀에 쫓겨 내달음치는 사람들이 연출하는 재미난 장면을 볼 수 있고 이마에 ‘당근 주지 마세요’란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새끼 당나귀들도 볼 수 있다.

서부개척자들이 캘리포니아 사막을 건너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머물렀다는 오트맨에는 추억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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