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메달 수프

2011-01-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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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프 애나 김의 Inside Kitchen

아버지를 위해… 사랑 ‘보글’

펄펄 끓일까, 얌전히 줄여서 할까, 찬물인가, 더운물인가, 굽고 끓이는지, 볶아 끓이는지, 맑게 혹은 진하게, 나라마다 다양한 국물요리의 비법은 세상문화를 보는 만큼 다양하다.

일년 중 이때만큼 인심 좋게 가득한 수프보다 더 따뜻한 만족을 주는 음식도 드물 것이다. 남을 위해 요리하는 셰프이고 여행이 많은 사람으로서 간단히 만들 수 있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한 끼의 선택은 당연 수프이다.


1월의 쌀쌀함이 있는 장소면 국물요리에 대한 식욕은 단연 어느 누구라도 어떤 건강상태이건 세계 공통의 편안한 전통, 몸과 마음의 치유 음식임에 틀림없다.

몇백 가지의 다양한 맑은 수프(consomme, bouillon, broth), 진한 수프(puree, bisque)부터 앞 접시부터 챙기는 눈이 번쩍 뜨이는 큰 전골 종류(bouillabaisse, rouille, ragout) 등 스푼보다 포크를 들어야하는 건더기가 듬뿍한 걸죽한 포만의 빅 보울의 스튜, 검보, 차우더까지 참 다양하다.

코스 디너에 등장하는 갈라 디너 메뉴로 쌉쌀한 멜론 수프(bitter melon soup)은 입맛을 돋우고 거위간과 굴 콘소메(foiegras consomme huitre)의 바다와 육지의 조화, 캐비어가 든 컬리플라워 수프(cream of cauliflower with caviar)도, 디저트인 과일 수프(fruit soup), 더위를 잊는 가스파초(gazpacho)도 참 다양하지만 수프란 담긴 재료 자체를 가장 잘 나타내 맛이 어우러지고 모두 섭취한다는 건강을 지키는 훌륭한 요리라는 장점이 있다.

주방에서 일하는 중 종종 접하게 되는 일은 채식자를 위한 야채수프에 깜박 잃고 실수하여 닭 육수, 멸치, 가다랑어포가 든 베이스 스탁으로 끓이는 바람에 불만을 듣는 일도 만만치 않고, 육수냄비에 실수로 빠진 채 나무주걱을 몇 시간 동안 끓인 쿡에게 섬유질을 추가했냐는 주방장의 재치 있는 책망도 듣는 일도 있다.

이렇게 수프는 식당이라는 단어의 어원 restaurer을 만들게 되는 최초의 상업메뉴이며 특히 한국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주 메뉴임에 틀림없다
이번 겨울 유럽의 세계조리대회에서 심사하면서 10그램 정도의 정교한 한입요리(micro bite size)와 고분자디저트의 요리과학도 접하고, 설탕으로 만든 정원의 창작성, 북유럽의 다양한 식기 디자인에도 감탄했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나의 금메달 메뉴는 동료 셰프가 아버지를 위해 끓여준 평범한 맑은 치킨 수프(brodo pollo)간 아니었나 싶다.

북유럽에서 일정을 마치고 주방장인 이태리 친구 집에 점심 초대를 받았다. 그는 호화유람선의 총주방장이 아닌 평범한 아들로서 고향집 부엌에서 아버지의 점심인 콩소메를 준비하고 있었다.

기본 야채(mirepoix)와 월계수 잎을 함께 넣어 끓인 옅은 레몬 색의 맑은 닭육수(consomme)에 라비올리를 넣어 끓여주는 간단한 요리(capellacci·사진)였다.

할머니가 쓰던 100년이 넘은 오븐 옆 식탁에서 접시에 담아주고 주고받는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 수저로 만들어내는 후루룩 소리에 주방전체에 웃음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지난주의 예술적 메뉴나 감각적 실험적인 요리의 맛이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은 것에 비해, 이태리의 라비올리 수프가 돌아온 후에도 금메달 요리로 마음에 남는 것은 내 고향 어머님의 떡만두국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국경과 시간을 넘는 전통과 일상의 정성스런 요리 그리고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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