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티파티와 커피파티

2010-10-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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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중 칼럼

18세기 영국은 본국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 미국으로 수출하는 차(tea)에 세금을 매기자, 미국은 ‘자신들의 대표 없는 세금은 낼 수 없다’는 의미로 1773년 12월, 인디언으로 분장한 수 명의 미국인들이 보스턴 항구에 정박한 영국의 선박에 실려 있던 차상자를 모두 바다로 내던져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것을 보스턴 차사건(Tea Party)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티파티라는 말을 요즘 많이 듣게 된다. 물론 단순히 차를 마시기 위한 사교모임 이야기도 아니고 미국 독립전쟁의 시초가 되었던 보스턴 티파티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요즘 많이 회자되고 있는 이 티파티는 이미 충분한 세금을 내었다(Taxed Enough Already)라는 의미를 줄인 말이기도 한데, 이는 민간이 주도하는 운동으로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후 불과 6주 만에 시작되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시작된 후 경제난 타개를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8,000억달러의 경기부양자금을 투입하자 이에 반대하는 몇몇 인사들이 일반 납세자들 간의 연대를 위하여 시작한 일종의 시민 불복종운동으로, 2009년 세금신고 마감일인 4월15일을 기해 전국 500여개 도시에서 동시에 집회를 열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해 3월27일 네바다에서의 첫 모임을 시작으로 4월15일 세금마감일까지 워싱턴 DC로 이어지는 47개 도시에서 릴레이로 조세에 저항하는 집회를 열었으며 이때 기조 연설자로 전 알래스카 주지사이자 지난 대선의 공화당 부통령 후보이었던 새라 페일린을 내세웠다.


이것은 티파티가 작은 정부와 세금감면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새라 페일린과 정치적 이념이 일치하고 이 극단적 보수운동에 대해 양측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티파티가 단순히 공화당의 일부가 아니며 자신들의 운동이 매우 독립적임을 주장하고 있는데, 실제로 중도보수의 길을 걷고 있는 공화당의 주류층과 대립되기도 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극단주의 정책이 채택되지 않을 경우 다음 대선인 2012년께에는 지금의 티파티를 주축으로 하는 제3당이 생길 것이라는 암시도 하고 있다.

또 며칠 후 치러질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티파티는 자신들의 정치세력을 확인하려 하고 있는데, 중간선거란 대통령 임기 중반에 하원 전체와 상원 100석 중 3분의1을 뽑고, 주지사, 시장 등 주요 공직자를 새로 뽑음으로써 여당과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선거이다. 그런데 최근 치러진 공화당 후보로 출마할 경선자를 뽑는 예비경선(primary)에서 이들은 기존의 공화당 소속의 정치가들을 제치고 많은 티파티 지지자들을 승리케 하는 등 꽤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극보수주의자들을 주축으로 하는 티파티에 반대해 지난 1월에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이자 사회 운동가인 에너벨 박에 의해 커피파티라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에너벨의 주장은 의료보험 개혁의 과정에서 보여주듯 범국가적인 이슈에서 분열되는 미국, 양당체제인 공화당과 민주당이 대립하며 서로의 세력 확장에만 몰두하는 정치행태에 식상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국가의 정책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자는 취지이고, 커피를 마시며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듯 만나 토론하며 미국시민으로서 부딪치는 여러 사안에 관해 적극적인 협력으로 긍정적인 답을 찾자는 것이다.

티파티가 공화당 인사들로부터 시작된 것에 반해 커피파티는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는 연방정부의 정책에 협조적이며, 정부와 의회에 협력하기를 원하는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한 진보적인 단체로 보이고 있다. ‘깨어 일어나자’ ‘정부가 우리를 제대로 대표하도록 만들자’가 그들의 모토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페이스북 홈페이지를 통해 시작된 그녀의 주장은 “민주주의는 풋볼시합처럼 누가 이기느냐 지느냐의 싸움이 아니고 토론과 설득을 통해 최선의 합의점을 찾자는 것”이며, 이에 많은 지지자들이 생겨 처음 한 달만에 20만명 이상이 커피파티에 조인하였고 지금은 미 전국 47개 주에서 모임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다음 주에 있을 중간선거에서 이 티파티든 커피파티든 어느 쪽이 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지는 선거 후에 보여지는 결과와 분석에 따라 밝혀질 것이겠지만, 이 두 파티는 이번 중간선거 뿐만 아니라 앞으로 미국 정치의 흐름을 좌우할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어찌됐든 이민역사가 짧고 소수계인 우리 동포사회의 여론을 들어본다면 아무래도 커피파티 쪽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

사족이겠는데 이미 거대한 물결이 되어 어쩌면 미국 역사의 흐름을 바꾸게 될지도 모르는 커피파티를 제창하고 이 풀뿌리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에너벨 박이라는 여성이 한국인 1.5세인 것이 흥미롭고, 이민 백년의 긍정적인 결실 중의 하나인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또 한 가지는 물론 대통령의 선출에도 인터넷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세상이긴 하나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민중운동이 주로 아이들이나 열중하는 줄 알았던 인터넷 페이스북을 통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깨닫게 하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213)272-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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