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2010-03-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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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욱이 이야기

맑은 하늘이 유난히 빛나는 아침이다. 특히나 월요일은 월요병 때문에 출근할 때 몸을 비비꼬면서 운전을 하는데 날씨가 나의 마음을 그나마 달래주는 아침이다. 직원들과 회의가 있어서 서둘러 출근을 하는데 다른 차들도 회의가 있는지 다들 서둘러 나온 탓에 출근시간이 조금 늦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문을 열려는데 열쇠가 꼼짝을 하지 않는다. “어? 이거 왜 이러지?” 좌우로 열쇠를 이리저리 돌려도 움직이질 않고 혼자 씨름을 하고 있으니 앞 사무실의 미국 아저씨가 “너희 사무실도 털렸나보다. 문을 앞뒤로 흔들면서 열어봐. 나도 그렇게 열었어.” “엥?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털리다니.” “간밤에 도둑이 건물 전체를 털어갔잖아. 빨리 들어가서 뭐가 없어졌는지 잘 봐봐.”

앞 사무실 아저씨 말대로 문을 마구 흔드니 겨우 열렸다. “어머나 세상에. 이게 뭔 일이야?” 바로 다른 직원이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사무실이 왜 이리 정신이 없지?” “간밤에 도둑이 들었다는데. 내 모니터를 들고 갔네?” 여기 저기 사무실을 둘러보며 없어진 물건을 확인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그나마 회사제품은 하나도 안 가지고 가고 컴퓨터 모니터와 사진기 등 전문가의 소행(?)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사무실뿐만 아니라 2층짜리 건물 전체를 털었으니 이 나쁜 녀석들이 한두 명은 아닌 것 같다.

월요일 오전 내내 없어진 물건을 확인하는 일과 건물에 세들어 있는 입주자들끼리 서로 뭐가 없어졌는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이 갔다. 건물주가 바로 옆 건물에 있기 때문에 자주 와서 부서진 곳이 없는지 확인하느라 분주하게 시간이 흘렀다. 다음 날부터는 건물 전체가 뚝딱뚝딱 윙윙 부서진 문을 고치고 교체하는 소리가 진동한다. 알람을 설치하고 테스트를 하는지 알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 마디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고 다들 난리다. 외부인의 출입도 세심하게 지켜보고 있다.


앞 사무실 미국 아저씨가 며칠 후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내가 이 건물에서 22년간 일했지만 한 번도 도둑이 든 적이 없었어요. 너무 안전해서 항상 안심이었는데 이번에 된통 걸렸네요. 중요한 것들은 사무실에 두고 다니면 안 되겠어요.” 항상 눈인사만 했는데 이번에 건물 전체에 입주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이 생겼다. 아침에 만나면 “문은 다 고쳤니? 오늘 페인트 다시 칠한다면서?” 서로를 챙겨주고 안부를 물어본다. 도둑 녀석들이 물건은 훔쳐갔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훔쳐가지 못했나보다. 이번 일을 통해 이웃 사무실들과 더 친해진 계기가 된 것을 보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번에 잘 고쳐놓았으니 다음엔 못 들어 오겠지. 나쁜 녀석들 같으니라고.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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