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 이시야마를 다시 만나다 (하)

2010-03-06 (토)
크게 작게

▶ 승욱이 이야기

이시야마는 청력사 ‘지나’를 통해 지난 5년간 승욱이가 듣는 것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잘 들었다고 했다. “듣는 것만 좋아진 것이 아니에요. 이제 말도 조금씩 따라 하기 시작했어요.”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시야마는 “글쎄요… 앞으로 얼마만큼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와우이식을 하고 5년이 지나서 말을 했다는 기록은 없어요. 청각장애가 있는 경우 와우이식을 받고 대부분 2년 안에 말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승욱이는 와우이식도 늦게 한데다 10세가 넘어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면… 좀 불가능하지 않을까” 어두운 얼굴로 바뀌는 나 때문인지 이시야마는 말을 바꾸며 “이만큼 듣고 수화로 표현하는 것도 의학적으로 대단한 결과입니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승욱이 외에 다른 시청각장애인에게 와우이식 수술을 했나요?” “아니요. UCLA에선 승욱이 한 명 뿐이었습니다.”

승욱이 귀 안을 들여다보면서 귀지가 너무 많고 가만히 있어야 손을 댈 수 있는데 이 상태로는 마취를 해야 가능하겠단다. 일주일 후에 수술실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우린 다시 병원을 오기로 했다.

일주일을 기다리는 동안 “귀지를 뽑으면 더 잘 들을 것이고, 말도 더 잘할 거야. 여태껏 어떤 의학적 기준에 의해 온 것은 아니잖아. 의사 선생님은 정상적으로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승욱이는 할 수 있어! 그럼, 할 수 있고 말고!” 다시 병원을 찾았고 마취를 하기 위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이시야마가 승욱이를 보러 왔다. “오늘 승욱이 컨디션은 좋지?” “네. 감기도 걸리지 않았고 어제 저녁부터 물도 먹지 않고 왔어요. 근데, 뭐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정말 승욱이가 정상적으로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선생님의 표정이 정말 난감해 하는 것을 역력히 볼 수 있다. “이번에 선생님을 만나면 또 언제 우리가 다시 만날지 모릅니다. 말해 주세요,” “언어학적으로는 불가능한 겁니다. 하지만 의학적 기록이나 자료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우리 주변에 많이 일어납니다. 승욱이가 앞으로 어떻게 자랄지는 아무도 몰라요. 지금처럼 열심히 언어치료를 받고 가르치면 분명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겁니다.”


승욱이를 마취실로 들여보내는데 엄마가 함께 들어오란다. 불안한지 들고 있는 장난감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얼마나 기운이 센지 의사·간호사들과 내가 붙잡아도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산소마스크를 통해 들어가는 마취제는 쥐고 있던 장난감을 힘없이 내려놓게 했다. 귀지를 뽑는 일도 승욱이에겐 쉽지 않은데 말하는 것도 이시야마의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겠지?


김민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