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 보여주고 싶다

2010-01-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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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욱이 이야기

비가 왔다. 이런 비를 장대비라고 한다. 시원하다 못해 개운한 비가 한 주 내내 내린 후 우리에게 엄청난 선물을 하나 남겼다. 다이아몬드바 블러버드를 지나면 눈앞에 펼쳐진 진풍경을 볼 수가 있다. 일년에 며칠 볼 수 없는 광경인 겨울비 온 뒤에 눈 덮인 산이다. 와~ 라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온 들판엔 고개 숙여 숨어 있던 푸릇푸릇한 새싹이 나오고 병풍처럼 둘러싸인 먼 산엔 눈이 덮여있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게다가 공기도 맑고, 하늘의 구름은 천사가 빗자루로 쓸어 놓은 듯 정렬을 하고 있다. 일년에 몇 번 자연으로부터 받는 귀한 선물이라고까지 생각한다.

그래서 주말에 승욱이를 집에 데리고 오면서 “승욱아, 저것 봐! 산 봐봐, 눈 봐봐. 예쁘지 않니?” 엄마의 흥분한 소리에 그저 배시시 웃음만 지을 뿐 승욱인 아무런 감흥이 없다. ‘아 그렇지, 우리 승욱이 앞을 못 보지’ 나도 가끔씩 잊어버리는 사실이 승욱이가 앞을 못 보는 것이다. 우리 승욱이가 눈 덮인 산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비가 오는 날도 승욱인 이 빗물이 어디서 오는 건지 몰라서 손을 뻗어 비를 만지려 한다. 얼굴에 빗물이 떨어지면 재밌어 하면서 계속 얼굴을 내밀고 있는 아이다.

우리 승욱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다이아몬드바 블러버드길과 눈 쌓인 산이 맞닿은 모습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빗방울이 땅에 후두둑 떨어지는 모습을, 각가지 모양을 만들어내는 하늘의 구름을, 그랜드 애비뉴 길에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는 들판을, 집 뒤 쪽에 피기 시작한 알 수 없는 이름의 들꽃을,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는 계절의 변화를 승욱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아이와 함께 볼 수 없으니 혼자 보는 것이 되레 미안하다. 예전에 책에서 보니 선천적 시각장애인들은 꿈도 촉각이나 소리로 꾼다는데 우리 승욱이는 잠잘 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니 그럼, 느낌으로 꿈을 꿀까? 꿈나라에서도 세상을 볼 수 없으니 참,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하나…
이제 봄으로 점점 다가가면서 주변은 한없이 아름다워질텐데 그럴 때마다 승욱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어찌할까? 승욱이를 위해서 반만 보고 느낄까? 아니면 승욱이를 대신해서 두 배로 보고 느낄까? 오늘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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