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네가 가야할 길

2010-0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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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이 기숙사에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사진 찍는 것조차 오피스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내가 카메라를 잡았다. 친한 디렉터가 일하는 날을 D-day로 잡고 디렉터에게 승욱이의 저녁시간이 너무 궁금하니 잠깐만 비디오 촬영을 했으면 좋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소형 비디오 카메라를 보더니 디렉터가 지켜보는 가운데 승욱이만 찍는 것을 잠깐 허락한다고 했다. 소형 비디오 카메라지만 사실 엄청 잘 찍히는 전문가용인 것을 몰랐나 보다.

영상을 찍는 효종씨에게 촬영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게 숨죽여 승욱이를 따라다니며 찍기 시작했다. 지난 3년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승욱이의 기숙사 생활이 궁금했는데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담당복지사의 말에 스스로 움직이는 모습을 담으며 신기하기도, 놀랍기도, 대견하기도 하다. 샤워시간, 목욕용품이 있는 방으로 가서 자신의 목욕용품을 들고 샤워실까지 싱글벙글 웃으며 가고, 또 샤워실에 들어가선 스스로 옷을 벗고 용변을 본 후 샤워대까지 능숙하게 걸어가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옆에서 따라다니던 디렉터가 지난 일년간 독립훈련을 시켰더니 혼자 할 수 있다고 디렉터가 더 만족해한다.

샤워를 마치고 다시 목욕용품을 제자리에 갔다두고 자신의 방을 스스로 찾아 침대까지 저벅저벅 걸어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목까지 덮고 바른 자세로 누워 있다. 잠자리에 누운 승욱이의 미소 띤 얼굴을 보니 자꾸 카메라 초점이 흐려진다.


‘엄마, 나 이만큼 잘해 그러니까 이제 걱정하지마’ 승욱이가 말을 할 줄 알면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해줬겠지. 일곱 살 아이를 기숙사로 보낼 때의 생각이 겹쳐지면서 눈물이 난다. 어린아이를 기숙사로 보내는 것을 백 번 천 번 후회하고 또 후회했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래도 저만큼 독립적으로 자라준 것이 너무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장애인들의 숙제인 독립적인 삶을 승욱이가 이제 조금씩 터득해 나가는 것 같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차에 두고 간 승욱이의 장난감에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난다.

‘아들아, 앞으로 네가 가야 할 길이 이렇게 들려지는 아름다운 음악 같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너보다 오래 살면 무슨 문제겠니. 모든 장애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바람이 장애자녀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인데 이제 엄마는 너를 세상에 둘 수 있는 자신이 조금씩 생긴다. 이것이 네가 가야 하는 길이라면 당당하고 멋지게 갔으면 좋겠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휠씬 더 독립적인 승욱이가 되길 기도할 게. 승욱이 화이팅~’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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