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길라잡이

2010-01-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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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일기 - 승욱이 이야기

집회를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길이다. 비행기를 타고 갈까 생각을 했지만 먼 거리를 차로 승욱이와 함께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결정을 했다. 마침 영상을 찍어주는 효종씨가 함께 가기로 해서 운전은 걱정 없이 즐거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날씨도 좋고, 승욱이 기분도 좋고, 개스도 가득, 밥도 잔뜩 먹고, 또 든든한 GPS와 함께 출발하기에 세상 어디를 가도 걱정이 없다. 승욱이가 좋아하는 라피 아저씨의 음악도 켜고 오랜만에 아들과 나들이를 떠났다.

그런데, 베이커스필드를 지날 때부터 GPS 아줌마의 음성은 프리웨이를 달리고 있는데 자꾸 좌회전을 하란다. 나중엔 짜증을 내면서 유턴을 하라 명하기 시작했고. 그러더니 자꾸 다음 출구에서 내리라고 한다. 당황하기 시작했다. 빌려온 GPS가 길을 잃은 것이다. 설마설마 하던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 미친 GPS가 우리를 농장 한가운데로 들여보낸 것이다. 우로는 오렌지나무, 좌로는 아몬드나무… 지도를 뽑아 놓은 것을 집에 두고 온 것을 나중에 알았다.


우여곡절 끝에 첫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가는 거리가 두 시간 거리. 하지만 우린 숙소까지 4시간 반만에 농장을 헤매며 도착하게 되었다. GPS가 정신이 완전히 나갔으면 몰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길을 놓치는 것이다. 인공위성에 문제가 있는 건지 완전 호러영화를 한편 찍고, 게다가 차에서도 이상한 소리가 나고.

같이 간 효종씨는 얼마나 떨던지. 그 와중에 승욱이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소리나는 반짝이 장난감을 켜고 신나게 앉아 있고, 칠흑같이 깜깜한 밤에 승욱이 장난감 불빛이 얼마나 번쩍였는지. 먼 거리를 돌아오면서 정말 많이 웃었다. 정신나간 GPS 아줌마, 다이아몬드바에 돌아오니 정신 차리고 너무나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준다. GPS가 동네 체질인가보다. 장거리에 약한 것이 나와 닮았다. 동네에서 아주 강한 것이 나와 아주 흡사하다.

GPS만 믿고 떠난 것이 나의 최대 실수였다. 우리의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라 확신했던 것에 그만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길을 헤매고, 길을 잃고, 길을 못 찾고 무진장 시간을 허비했지만 샌프란시스코를 가면서 언제나 농장지대를 수박 겉 핥기로 보았는데 이번에 제대로 농장체험을 하고 돌아왔다. 정신나간 GPS가 우리에게 괜찮은 농장체험 길라잡이 역할을 해준 것 같아 좋은 추억 여행이었다. 그런데 한번은 좋은 추억이지만 만약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다면 악몽이지 않을까?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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