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이 값

2010-01-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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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일기 - 승욱이 이야기

겨울에 태어난 아이가 나다. 오늘이 내 생일이다. 새해를 맞이하며 놀람과 당황과 충격과 적응 안 됨과 동시에 나이를 한 살 꽉 먹어버리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 어릴 적, 1월1일 다음날이 생일이다 보니 제대로 생일 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새해 첫 날 끓인 팅팅 불은 떡국을 꾸역꾸역 먹으며 생일선물은 언제나 세뱃돈으로 대신했다. 진짜 억울해.

고등학교 때부터는 친한 친구들과 신년회 겸 생일파티를 거하게 하기 시작했다. 새해 벽두부터 갈곳 없고 놀 때 없던 친구들은 전부 내 생일에 대거 참석해 주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내 생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마 친구들 생일 중에 제일 많이 모였던 생일이 내 생일이지 않았을까. 결혼하기 전까지 생일은 언제나 화려하게 친구들과 기억에 확실히 남게(?) 잘 보냈다. 그런데 결혼하고 승욱이를 낳은 후 생일의 의미조차 잊고 지내게 되었다. 생일이 되도 그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몇 년이 흘렀다.

이것이 아줌마 정신인지, 아이들과 다른 가족 생일은 며칠 전부터 어떻게 해줘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정작 내 생일이 되면 흐지부지 넘어가기 십상이고 친정 엄마가 생일상을 차려준다고 해도 마다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모두 내 생일은 소홀하다 못해 과거처럼 새해 첫 날 끓인 떡국과 남은 반찬으로 대충 때우고 넘어가는 사태까지 왔다. 그러다 보니 점점 서글픈 생각에 작년부터는 한달 전부터 통보를 하기 시작했다. ‘김민아 생일 30일 전, 20일 전, 10일 전, 하루 전…’


가족들 모두가 “와 진짜 유치찬란하다”고 해도 꿋꿋하게 통보를 했다. 생일 전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서른 끝자락에 서 있는 아줌마가 생일이나 연연하고. 참 나이 값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강원도 두메산골에 가장 추울 때 나를 낳느라 고생한 엄마 생각은 하지 않고 12세 우리 큰아들과 수준 똑같이 생일을 외치고 있으니. 참 나이는 도대체 어디로 먹었는지.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간다는 건 그만큼 책임이 따르고 나이의 값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인데 점점 더 미성숙에 철없음의 극치로 내달리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2010년 생일부터는 나잇값을 제대로 하는 내가 되고 싶다. 난 1월2일이 생일인 것이 지금 너무 좋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나이도 한 살 더 들면서 더 성숙해지는 느낌이랄까?

“김 민아! 올해도 선한 싸움 잘 싸우고 너의 달려갈 길을 열심히 달려가길 바래. 아자! 아자! 화이팅!”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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