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패션 2009, 한 페이지를 걷다

2009-12-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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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계 연말 결산 ‘핫 5’

▶ 유럽 패션계 약진 두드러져

최근 구치(Gucci)의 전 수석 디자이너 톰 포드는 한 인터뷰에서 ‘패션을 보면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다’고 했지만 최근 들어 이 세계는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복잡다단한 심리전과 교묘한 자본주의 논리에 허영과 반항의 문화까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어 웬만한 패션 내공이 아니고서는 시대를 읽기는커녕 그 물결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기 십상이다. 아마도 수 억년 전 인류가 단순히 추위를 피하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던 단순한 ‘옷’이 진화와 진화를 거듭해 ‘패션’이라 불리게 되다 20세기엔 ‘아트’의 경지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선 ‘소통의 도구’로까지 등극했다. 그런 의미에서 2009년 패션계의 소통은 그 어느 해보다 시끄럽고, 유난스럽고, 화려한 화술을 자랑했다. 뉴욕에 비해 ‘올드’했던 파리와 밀라노 패션계에도 젊은 피가 속속 수혈되면서 대중들과 소통하는데 성공한 유럽 패션계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패션계는 지금 서서히 일대 지각변동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 다사다난했던 2009년 패션계를 아이템별로 결산해 ‘핫 5’를 간추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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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디자이너’로 딱 한 명만 선정해야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발망의 수석 디자이너 피에르 데카르냉을 꼽는데 이견을 제기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듯 싶다. 이번 시즌 발망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이 박힌 미니 스트롱 숄더 드레스는 올 한 해 유행의 모든 것을 한눈에 알려준다. 또한 모델이 신은 주세페 자노티(Giuseppe Zanotti)가 디자인한 발망의 블랙 부티 역시 핫 아이템으로 올 한 해 슈즈 유행경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내년에도 데카르냉의 승승장구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20세기 ‘아트’의 경지에서
21세기 ‘소통의 도구’로
어느 해보다 화려했던 한 해

■ 핫 키워드 - 발마니아(balmainia)

프랑스산 브랜드 발망을 추종하는 매니아들을 통칭해 부르는 신조어인 ‘발마니아’는 발망의 수석 디자이너 피에르 데카르냉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찬사와 헌사가 됐지 싶다.

이미 지난해 열린 올 봄/여름 컬렉션에서부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는 올 봄과 올 가을에 선보인 컬렉션에서도 평단과 트렌드 세터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지난 시즌에 선보인 스트롱 숄더(strong shoulder) 재킷은 그의 선배격인 유명 선배들도 민망함을 무릅쓰고 카피할 만큼 올해를 관통하는 트렌드가 됐다.
또 마이클 잭슨의 죽음을 예상이라도 한 듯, 잭슨이 빌리진을 부르며 문워크를 하던 당시 입던 밀리터리 재킷을 오트 쿠튀르 감각으로 재해석한 재킷 역시 소형 자동차 한대 값이라는 천문학적 가격에도 불구하고 없어서 못 팔만큼의 인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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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마니아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발망의 히트 아이템들. 2009 spring/summer collection.



■ 핫 트렌드 - 보이프렌드

지난봄부터 컨템포러리 브랜드를 중심으로 젊은 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은 바로 보이프렌드 컨셉이다. ‘남친’(남자친구)의 옷장을 뒤져 입은 것처럼 헐렁한 진과 재킷, 셔츠 등이 인기를 끈 것이다. 스키니 진 이후 가뜩이나 특별한 유행경향이 없어 매출 저조에 시달리던 프리미엄 진 브랜드들은 앞다퉈 배기 스타일의 헐렁한 남성용 진을 여성용 매장에 내놓기 시작했고, 스키니 진에 갇혀 숨조차 쉬기 힘들었던 여성들은 오랜만에 숨쉴 자유를 허락하던 시절이었다.
재킷 역시 허리 라인을 강조하던 기존의 재킷이 아닌 라인이 일자로 떨어지면서 정말로 언뜻 보면 ‘얻어 입은 게 아닐까’ 싶을 만큼 헐렁한 디자인이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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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 블랙 레이블(Diesel Black Label).


■ 핫 아이템 - 레깅즈

올 한해 패션계를 논하면서 레깅즈를 빼놓을 수 있던가. 어찌 보면 레깅즈 역시 80년 트렌드의 유산일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도 올해처럼 대중의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적이 없었지 싶다. 보통 레깅즈라 하면 코튼 소재의 블랙 컬러를 떠올리게 되는데 올해는 그 상식을 깬 수도 없이 아름다운 컬러와 소재가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소재는 가죽(또는 라텍스)과 새퀸. 또 애니멀 프린트에서부터 컬러도 그린, 핑크, 블루, 바이올렛 등 알록달록해졌으며 디자인에 있어서는 디스트레스드(distressed) 진처럼 찢어진 레깅즈도 젊은 층에 사랑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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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 액세서리 -오버사이즈 목걸이

‘잇 백’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이 오버사이즈 목걸이가 아닐까 싶을 만큼 올 한해 이 아이의 활약은 눈부셨다. 지난해부터 랑방(Lanvin)이 선보이기 시작하면서 주목을 받은 이 아이템은 현재는 컨템포러리 브랜드로까지 번져 아예 옷에 이 목걸이를 부착해 판매하는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크기만 크다고 이 트렌드에 넣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알고 있듯 블랙 리번 소재로 뒷목에 묶게 돼 있는 디자인인데 그래서인지 목걸이 비즈 컬러 역시 블랙과 실버가 강세다. ‘잇 백’에 이 목걸이를 감히 비견하는 이유는 랑방이나 유명 주얼리 디자이너 브랜드가 내놓는 것은 거의 명품 백에 맞먹는 가격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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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방(Lanvin).


■ 핫 슈즈 - 부티(bootie)

슈즈 트렌드를 논하면서 허벅지를 넘어서는 길이의 ‘롱롱’ 부츠와 막판경합(?)끝에 선정한 부티는 올 초부터 슈즈 트렌드에서 막강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부티를 언뜻 본 왕년의 패셔니스타들은 혹 ‘앵클 부츠 아니야?’라고 반문할 지 모르겠지만 정작 그 말은 들은 부티는 좀 서운할 듯 싶다.

부티는 여성용 옥스포드 슈즈와 앵클 부츠의 중간 길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싶다.

여름용 부티는 구두코 앞을 트기도 하고 샌들과 구분이 안 갈 만큼 글래디에이터(gladiator) 컨셉을 차용해 파격적이고 섹시한 느낌들이 유행이었으나 이번 시즌엔 클래식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디자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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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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