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쿠크와 크커

2009-12-12 (토)
크게 작게
승욱이가 가장 먼저 말로 시작한 단어는 무엇인가? 헬렌 켈러는 ‘WATER’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말을 했다는데 과연 승욱이의 첫 단어, 지난 10년간 꽁꽁 감춰 두었던 단어의 시작을 오늘 쓰려고 한다. 수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먹는 단어를 먼저 수화로 익혔던 아이가 역시 말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쿠키와 크래커를 먼저 말로시작한 것이다. 모음을 따라하기 시작한 승욱이에게 스피치선생님과 처음 수화를 배울 때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마침 ‘크’발음을 잘 따라하는 아이에게 쿠키라는 발음을 들려주고 말을 따라하면 진짜 승욱이가 좋아하는 쿠키를 주었다. 일단 손에 만져주고 또 냄새를 맡게 한 다음 “승욱, 지금부터 선생님이 하는 단어를 따라하면 쿠키를 줄 거야. 자 한번 따라 해봐. 쿠키”

“크~” “아니 다시, 쿠키!” “크…” “단어로 말을 하는 거야. 쿠키” “…” 몇 번 해보다가 발음이 되지 않으니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쿠키를 달라고 손을 내민다. 선생님과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무조건 쿠키를 달라는 아이와 말을 하면 준다는 선생님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옆에서 보고 있는 내가 애가 탈 지경이다. 한치의 물러섬이 없는 선생님은 “쿠키라고 말하면 줄께” “크…”


다시 손을 내미는 아이, 마치 쿠키를 주면 말을 하겠다는 몸짓이다. 급기야 방바닥에 뒹굴기 시작하고 손에 잡히는 것을 무조건 집어던지면서 도저히 수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또 한 주가 지나고, 다시 스피치시간이다. 난 “승욱이가 단어는 말을 못 하나봐요. 아직도 아, 하, 카, 크 정도만 따라하네요. 집에서 여러 가지 단어를 가르치는데 전혀 따라하지 않아요. 승욱이가 언제쯤 쿠키를 말할까요?” 그때 선생님과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이 입에서 “쿠크?” 라는 말이 새어나왔다. 선생님과 난 동시에 눈이 번쩍 뜨이면서 “승욱, 쿠키! 쿠키!” “쿠크, 쿠크” “그래, 그렇게 말을 하는 거야. 와~”

승욱이의 단어 쿠키는 ‘쿠크’인 것이다. 그럼 크래커는 어떻게 말을 할까? ‘크커’가 승욱이 만의 크래커라는 단어다. 아직 정확한 발음을 따라하지 못하지만 말을 따라해 보려고 입을 벌렸다는 것이 우리에겐 큰 기적인 것이다.

그것도 10년만에. 만약 승욱이가 눈을 봤다면 벌써 말을 했겠지만 입 모양을 볼 수 없으니 내 입술에 승욱이의 손바닥을 갖다놓고 오늘도 말 연습은 계속되고 있다. 다음엔 어떤 단어를 말을 할지 매일매일 기대가 된다.


<김민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