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먼지

2009-11-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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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낡은 컴퓨터가 있다. 내가 쓰는 컴퓨터를 보고 다들 한 마디씩 한다. “웬만하면 새것으로 사지. 요즘 세일도 많이 하는데” 물건을 사면 망가질 때까지 쓰는 성격이라 핸드폰조차도 구닥다리 핸드폰을 최근에서야 바꾼 나다. 성격자체가 좋은 것, 새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냥 쓸만하면 다 좋아한다. 퇴근 후 컴퓨터를 켜는데 전원이 들어오질 않는다. 매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되는 ‘승욱이 이야기’를 써야 하는 날이라 그 당황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괜히 아이들에게 “컴퓨터 누가 망가뜨렸어!” 하고 소리만 지르고 있다. 아무리 전원을 켰다 껐다 해도 먹통이다. 일단 아침에 출근해서 가까운 컴퓨터 샵에 가져갈 요량으로 컴퓨터를 내려놓는데 먼지가 풀썩거린다. 이왕 컴퓨터 샵에 가지고 가기 전에 먼지나 털어서 갖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먼지를 털어 내는 스프레이를 하나 사서 열심히 본체 안을 청소를 했다. 드라이버로 본체 뚜껑을 열었더니 얼마나 먼지가 많은지 질식할 정도다. 그렇게 100년 묶은 먼지를 말끔히 털어냈다. 식구들 모두 잠든 후 괜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컴퓨터를 다시 방으로 가져와 전기선들을 하나씩 꼽고 전원을 켜보았다. 악~ 먹통인 컴퓨터가 밝은 파란색 전원이 켜지면서 작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컴퓨터가 먼지에 질식해서 기절한 것을 내가 살려낸 것이다.

“와~ 고쳤다~내가 컴퓨터를 고쳤어~” 진짜 빌 게이츠가 부럽지 않았다. 이렇게 기쁠 수가. 일단 수리비 안 들어 기쁘고, 다시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고, 고생스럽게 컴퓨터를 들고 다니지 않아서 좋고. 우하하하~

다시 작동하는 컴퓨터 때문에 혼자 기뻐서 싱글벙글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보이지 않는 먼지가 언제 그렇게 쌓였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보이는 것만 가지고 평가를 하는 것 같다. 주변을 한번 둘러 보라. 보이지 않는 먼지, 느끼지 못하는 공기, 당연히 받아들이는 빛, 땀을 식혀주는 바람,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체감온도. 내가 그만큼 둔하게 살았던 것을 오늘에야 알아차렸다.


아주 미세한 먼지가 컴퓨터를 질식시킬 정도면 사람에겐 얼마나 해로울 것인가. 곳곳에 숨어 있는 묶은 먼지를 이번 주엔 말끔히 털어 내야겠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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