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만남

2009-10-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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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얼굴을 대하지 않는 전화가 내가 살고있는 미국 서쪽 끝으로 동쪽 끝에서 오거나 북쪽 끝에서 전화가 올 땐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를 더 실감하게된다. 전화가 오는 사연도 참으로 다양하다. 장애자녀를 둔 부모님부터 ‘승욱이 이야기’를 읽고 격려 전화와 또 글을 쓰는 분들은 책에 ‘승욱이 이야기’를 싣겠다는 내용까지 다양하기도 하다. 책을 출간해서 직접 책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다. 물론 책 내용 중에 ‘승욱이 이야기’ 한 부분이 들어가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 아니 내가 알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분들을 이 글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에겐 그저 신기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랫동안 글이 연재가 되고 있다. 승욱이를 직접 만나는 분들은 한결같이 “어머, 이렇게 큰 승욱이일 줄은 몰랐네”라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신문에 난 사진이 너무 어릴 때 찍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오랜 기간 연재할 줄은 내 자신도 몰랐기에 사진을 바꿀 엄두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전화를 받은 분의 말씀에 마음이 뭉클했다.


“그냥 승욱이 엄마한테 전화하면 답답한 내 심정을 아무 조건 없이 다 이해해 줄 것 같았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누구에게 말 못하는 속상한 사정을 승욱이 엄마가 해결해 주진 못하겠지만 잘 들어줄 것 같았어요.”

그러고 보니 나 역시도 누군가 나의 답답한 마음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군중 속의 빈곤이라고 주변에 사람들을 많았지만 내 입장에서 장애자녀를 키우면서 힘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던 시간이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사연을 나서서 도와주지 못할 때가 더 많다. 하지만 내가 “그랬군요, 속상하셨죠, 힘들었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라는 말을 해주는 것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때론 장애자녀를 키우는 일은 참 버거울 때가 많다. 서류작성 해야하는 것도 많고, 일년에 몇 번씩 미팅도 가야하고, 다른 장애자녀와 비교에서 오는 좌절감도 있고, 학교에서의 부당한 대우, 장애자녀가 점점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경우도 있고…. 그럴 땐 누구와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 내 입장에서 들어줄 사람을 찾을 때가 있다.

가끔은 글쓰는 이유를 내 스스로 물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난 답을 찾는다. 오늘도 힘들어하는 그 누군가가 전화가 오면 난 그저 웃으며 전화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지금의 최상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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