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양성 더 보여준 ‘베니스 영화제’

2009-09-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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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성대한 개막 ‘영화 축제’

제66회 베니스영화제가 지난 2일 리도섬(베니스에서 수상버스로 1시간 거리)에서 성대히 개막됐다. 그런데 오는 2012년 준공을 목표로 현재 영화제 본부인 새 팔라조 델 시네마의 건축공사가 한창이어서 어수선했는데 전 세계서 찾아온 기자들과 영화 관계자들이 일으키는 소음으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영화제는 오는 12일에 끝난다.


25개국에서 71편 출품
미국영화 17편이나 나와
개막작은 이탈리아 작품
‘입체영화 부문’ 신설과
장르영화 문호 확대 특징
한국작품은 달랑 2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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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장인 카시노 앞에 선 기자.



개막작은 ‘시네마 파라디조’를 만든 주세페 토나토레의 2시간반짜리 대하 서사극 ‘바리아’(Baaria). 이탈리아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는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마르코 멀러 영화제 예술 감독은 이번에 이탈리아 영화에 큰 비중을 두었다.

이 영화는 감독의 고향인 시실리의 작은 마을 바게리아를 무대로 한 한 가족 3대에 걸친 얘기로 이들을 통해 파란만장한 이탈리아의 역사를 조명했다. 그런데 이탈리아 영화사상 최대작으로 선전된 영화가 내용이 허술해 실망을 했다. 토나토레는 필생의 역작을 만들려고 했으나 내용의 실을 기하지 못하고 영화의 스케일에 치중해 보기에만 그럴싸한 타작을 내놓았다.

역설적이라 할 것은 좌파인 토나토레가 만든 이 영화가 미디어 거부인 부르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수상의 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베를루스코니는 영화를 “모든 이탈리아 시민들이 꼭 봐야 될 명화”라고 칭찬했다. 이에 대해 토나토레는 기자회견에서 “그 같은 칭찬이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온데 대해 특별히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제는 그 어느 때보다 내용과 지리적 면에서 모두 다양성을 지녔는데 전 세계 25개국에서 총 71편이 출품됐다. 이 가운데 총 71편이 세계 최초 상영인데 총 23편이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노리고 나왔다. 심사위원장은 ‘브로크백 산’과 ‘색, 계’로 황금사자상을 두 번이나 탄 앙리 감독.

영화제의 또 다른 특성은 미국영화가 무려 17편이나 선정된 것으로 이 중 6편이 본선 경쟁작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영화는 메이저의 것이 아닌 인디영화들. 여하튼 미국영화가 이렇게 많이 선정된 이유는 지난해 영화제가 스타파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영화제에는 스티븐 소더버그, 마이클 모어, 올리버 스톤 감독 그리고 조지 클루니, 니콜라스 케이지, 맷 데이몬, 에이바 멘데스, 비고 모텐슨 및 하비 와인스틴 와이스틴 영화사 회장 등 할리웃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새 경쟁 부문에 입체영화 부문을 신설한 것과 장르영화의 문호를 대폭 넓힌 것도 또 다른 특성이다. 입체영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듯이 영화제는 ‘토이스토리’와 ‘업’ 등을 만든 존 래시터 제작자와 그의 제작사인 디즈니 소속 픽사의 제작팀에 생애 업적상을 주었다. 한편 멀러 예술 감독은 “장르영화의 문호를 넓힌 것은 베니스영화제가 예술영화에만 치중하지 않고 흥행성 있는 영화까지 다양한 영화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김광복의 단편 ‘엄마의 휴가’와 뉴욕서 활동하는 지나 김의 기록영화 ‘서울의 길’ 등 달랑 2편이 나왔다. 그런데 지나 김 감독은 영화제 ‘오리존티’(호라이즌스) 부문의 5인 심사위원 중 한 명이다.

기자는 1주간 머무는 동안 미국과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 영화 등 모두 9편을 봤다. 비고 모텐슨이 나오는 ‘길’(The Road)은 소위 지구 종말 영화로 상당히 심오한 내용을 지녔다. 지구의 모든 생물이 고사한 뒤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인 부자가 함께 생존을 위해 대륙을 횡단하는 얘기로 엄청나게 암담하지만 매우 강렬하고 또 여러 가지 메시지를 지닌 작품이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나오고 워너 허조그가 감독한 ‘배드 루테넌: 기항항 뉴올리언스’(Bad Lieutenant: Port of Call New Orleans)는 에이블 페라라가 만든 동명영화의 리메이크. 코케인 중독자인 형사의 얘기로 뜻밖에도 폭력을 자제한 우습고 서정적이기까지 한 영화.

또 다른 미국영화로 좋았던 것은 타드 솔론즈 감독의 ‘전시의 삶’(Life During Wartime). 솔론즈의 영화 ‘행복’의 일종의 속편으로 모두 허점을 지닌 고독한 여러 사람들의 얘기를 우습고도 통렬하게 그린 앙상블 영화다.

다분히 일방적이긴 하나 속 시원하게 재미있는 영화가 모어 감독의 기록영화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Capitalism: A Love Story). 꼴불견인 현 미국 경제의 상황을 초래한 주범들인 월스트릿의 은행과 모기지 회사와 증권회사들의 야바위꾼들과도 같은 실태를 파헤친 영화로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소더버그가 감독하고 맷 데이몬이 주연한 ‘제보자’(The Informant)는 FBI를 위해 곡물회사의 가격담합 비리를 고발한 회사 간부의 실화를 어둡고 우습게 그린 스릴러로 실화다. 데이몬이 열연을 하는데 내용이 너무 복잡해 혼란스럽다. 재미는 중간 정도.

프랑스 영화로는 예쁜 생쥐처럼 생긴 실비 데스튀가 주연하는 ‘루어드’(Lourdes). 휠체어에 의존해 사는 사지 불구자인 여자가 프랑스의 성지인 루르드를 방문했다가 몸이 정상이 되는 기적을 경험하는 내용으로 종교와 믿음과 기적을 탐구한 영적인 소품이다.

이번 체류에서 재미있었던 일은 지난 6일 기자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올리버 스톤(니카라과의 휴고 차베스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담은 기록영화 ‘국경의 남쪽’을 출품)과 마이클 모어 그리고 영화제에 형사물 ‘브루클린의 최고’를 출품한 안트완 후콰 감독 등을 위해 마련한 점심대접. 두 유명한 할리웃의 이단자들인 스톤과 모어가 나란히 앉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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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작인 주세페 토나토레 감독의 ‘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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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FPA 주최 오찬장의 올리버 스톤(오른쪽부터), 마이클 모어, 안트완 후콰.


<베니스에서-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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