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열정으로 일군 ‘서른살 커피 왕국’

2009-09-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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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MILL

라밀커피 크랙 민 대표의‘커피 사랑’
“커피공장이 내 놀이터였죠”

풍문은 달콤했다.


유명 커피회사 대표가 이제 겨우 서른이 될까말까 한 새파란 젊은이인데다 최근 실버레익 길에 오픈 한 카페가 대박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입맛 까다롭기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도시 서울에서도 5성급 호텔인 리츠 칼튼과 하이야트 호텔에 커피를 납품하고 있다고 했다. 이 풍문의 주인공이 서 있는 배경은 ‘라밀 커피’(LAMILL). 한인타운 카페에서는 물론 가끔 미국 식당에서도 심심찮게 눈에 띄는 이 유명 브랜드 설립자는 크랙 민(30) 대표. 공자가 생존하던 시대라 해도 이제 겨우 뜻을 세우는 나이 서른(而立)에 그는 그만의 왕국을 건설한 것이다. 너무 젊은 나이에 이룬 성공 탓일까. 혹자는 민 대표가 커피에 미쳤다(?)고도 했고, 또 누군가는 인적 네트웍이 풍부한 타고난 비즈니스맨이라고도 했다. 이 달콤한 풍문을 확인하기 위해 만난 자리, 그는 타고난 친화력과 커피에 대한 무모할 정도의 열정을 동시에 보여줬다. 풍문은 틀리지 않았고, 그 소문보다 더 확실한 냉정과 열정 사이의 그 어느 지점을 그는 거침없이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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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밀커피 크랙 민 대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바로 자택의 창 넓은 거실에 앉아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그에게 커피는 피곤한 일이 아닌 즐거운 놀이다.


#커피는 내 청춘의 이력서

가장 궁금한 지점부터 속사포로 질문해 들어갔다. 이제 겨우 서른, 도대체 언제부터 ‘이 바닥’에 뛰어 든 걸까. 만약 20대 중반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슨 노하우가 있어 고급 커피 브랜드 시장에서 ‘군계일학’을 점하고 있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명쾌했지만 그 쇼크는 꽤 오래 갔다.

“아버지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커피 회사를 운영하셨죠. 그런데 커피회사라는 게 전문 지식에 경영까지 보통 일이 아닌지라 두 번이나 회사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망하기 직전까지의 아버지 커피회사가 이제 겨우 열살 넘은 한 소년의 놀이터이며 가장 신나는 공부방이었죠.(웃음)”

덕분에 그는 열 두살부터 아버지 손잡고 따라나선 커피 공장에서 커피를 마시며 커피 맛을 익혔고 중학생 때는 이미 커피 로스팅 과정을 익혀 공장 어느 직원보다 탁월한 로스팅 실력을 자랑했다.

90년대 후반 민 대표의 부친은 두 번째 커피 공장까지 문을 닫은 뒤엔 아예 사업에서 손을 뗐다. 그래서 1999년 이제 겨우 열 아홉 된 크랙씨가 어머니와 함께 새롭게 런칭한 커피 브랜드가 바로 ‘라밀 커피’다.


“커피 원두 가는 그라인더라는 뜻을 가진 불어인데 어머니께서 작명하셨죠. 그러나 실질적인 경영과 마케팅, 세일즈는 모두 제 몫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미 어려서부터 얼굴 정도는 익힌 커피 농장 주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다 더 전문적이 커피 공부를 배웠고 그 사람들도 어린 사장의 커피에 대한 열정을 기특하게 여겨서인지 아주 열심히 가르쳐줬습니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죠.”

덕분에 그때 맺은 인연을 그는 지금까지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때 받은 그들의 도움을 지금은 그가 이 바닥 ‘큰 손’이 돼 갚아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제 겨우 그의 나이 서른이라곤 하지만 그의 커피 경력은 자그마치 17년이 넘는 셈이다. 겉으론 운 좋아 보이는 그의 성공 저편의 비밀의 문이 조심스레 열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높이 나는 건 그의 목적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의 목적은 멀리 보는 것이었던 듯 하다. 그래서 높이 날고 싶어했던 듯 싶다. 회사를 무작정 세우긴 했지만 열 아홉 소년이 감당하기엔 세상은, 비즈니스의 세계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브랜드 런칭 후 한 3년쯤 지나니 그는 이미 100만달러 이상의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이제 겨우 스무 살 초반의 청년이 감당하기엔 천문학적 액수다. 상식적으론 손 털고 나올 법도 했을 텐데 그는 오히려 담담했단다. 아니 오히려 호기롭게 배짱을 부렸다.

“주변에선 나가서 작은 곳이라도 고객을 끌어오라고 했지만 전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나가서 세일즈 하면 당장 이익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돌아다닐 시간에 전 제품 개발에 매달렸습니다. 라밀을 럭서리 브랜드로 키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하루 수십 잔의 커피를 마시며 무조건 커피에 매달리고 제품 개발에 전부를 걸었죠.”

그래서 그는 지금도 자신이 생산하는 커피를 마셔 보면 이 커피가 유통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것인지 로스팅 과정에서, 그것도 온도인지, 시간의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신의 경지’의 수준에 도달했다. 아마 공장에서도 열두 살부터 익혀 온 그의 타고난 커피 미각을 따라올 자는 없다. 그의 커피에 대한 무모하리 만치의 애정이 읽히는 대목이다.

당시 이처럼 회사 자금 상황이 어려워지자 거래처 커피 농장에선 더 이상 커피를 주지 않겠다고 통보해 왔지만 그는 “내가 파산하면 당신은 어차피 돈 못 받는다. 차라리 지금 내게 물건을 주고 그걸 팔면 내가 바로 대금을 갚겠다”고 배짱을 부렸단다. 그의 타고난 비즈니스 감각이 어떠한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결국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2000년 라밀은 LA에서 유명하다는 식당과 최고급 호텔 등에 납품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잘 디딘 첫발은 승승장구, 현재 라밀은 미스터 차우, 프로비던스, 리츠 칼튼 등 최고급 식당에 커피를 납품하고 거래처 수도 600여곳에 이를 만큼 고속 성장했다. 민 대표를 포함 직원 3명으로 출발한 라밀은 2003년 알함브라에 자체 사옥과 공장을 짓고 이전, 현재 1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명실상부 럭서리 커피 제조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중이다.
 


열두 살부터 익혀 ‘신의 경지’
런칭 3년만에 빚더미 위기
럭서리 브랜드 개발로 승부
최고급 호텔 등 납품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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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 민 대표는 요즘도 가끔 알함브라 공장에서 커피 테이스팅을 직접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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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앤틱과 유명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장식, 분위기도 그만인 라밀 부틱은 실버레익의 새 문화공간으로 떠올랐다.

#쌉쌀한 커피, 달콤한 인생

LA에서 글렌데일과 버뱅크 방향으로 가는 길목인 실버레익(Silver Lake) 길을 오가는 이들은 이미 알겠지만 이 작고 평화로운 타운에 지난해 약간의 부산함이 있었다. 작은 카페와 편의점, 장난감 가게가 전부인 이 곳에 럭서리하면서도 트렌디한, 그러니까 요즘말로 엣지 넘치는 부틱 카페가 들어 선 것이다. 외장 전면을 통 유리로 마감한 이곳은 안에도 앤틱 가구와 모던 시크가 절묘하게 교차, 이 동네 여피족들의 마음을 단번에 훔쳤다.

“홀세일이라는 게 사실 소비자들의 반응을 바로바로 알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커피를 직접 마시는 이들과 호흡하고 싶어 카페를 생각했죠. 준비기간만도 2년이 넘게 걸렸고 인테리어 작업에도 제가 직접 참여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죠.”

실내에 달린 대형 샹들리에는 프랑스에서 공수한 19세기 앤틱이며 소파 역시 개당 3,000달러를 호가하는 유명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 벽면을 장식한 35피트짜리 핸드 페인트 벽지 역시 파리에서 물 건너 온 것들이다.

인테리어가 이럴진대 커피 기계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다. 최고급 이태리 기계를 선정한 것은 물론 라밀의 인테리어 테마 컬러에 맞춰 맞춤 제작한 것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민 대표가 더 신경 쓴 것은 식사 메뉴. 어차피 카페를 열기로 한 것, 맛있는 음식까지 대접해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래서 그의 친구인 미셸린 스타 2개를 가진 식당 수석 셰프에게 부탁, 메뉴를 짜고 디저트까지 직접 이곳에서 베이킹 한다. 그래서 오픈과 동시에 불경기를 맞는 불운을 겪기도 했지만 실버레익 주민들은 물론 멀리 웨스트LA와 오렌지카운티 등지에서도 라밀의 명성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대박을 친 것이다.

현재 그는 유명 레스토랑과 손잡고 미 전국에 이 라밀커피 바를 40여개 오픈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당장 내년까지 LA 인근에 3~4곳 정도를 더 오픈할 예정이다.

#커피 끓이는 6가지 방법

민 대표가 라밀 카페를 오픈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맛본 다양한 커피 맛에 반해서다. 각 나라마다 커피를 내리는 방법이 틀리고 기계에 따라 또 그 맛도 천지차이라는 것을 안 그가 미국에서도
커피 매니아들에게 그런 다양한 커피 맛을 맛볼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라밀 부틱’에서 커피를 마시려면 일단 원두 종류를 선택하고 그 다음엔 커피 추출 방법을 정해야 한다. 라밀이 제공하는 커피 추출 방법은
자그마치 6가지. 일반 가정에서도 기구만 구입하면 따라할 수 있는데 그 추출 방법에 따라 조금씩 맛의 차이가 있다고.

◇케멕스(Chemex)=크리스탈 클린 컵 안으로 바로 빠져나가게 고안된 이 핸드 드립 법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핸드 드립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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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멕스


◇일본식 핸드드립(Japanese Hand Drip)=최근 민 대표가 가장 빠져 있는 커피 추출 법이다. 그는 핸드드립 방식은 맛이 선명하고 깨끗해 일본인은 물론 한인들도 좋아하는 맛이라고. 케멕스와 차이점은 일단 필터에서 소용돌이치면서 물이 내려가는 것과 필터를 통과하는 시간이 케멕스보다 조금 더 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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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드립


◇일본식 핸드 드립 아이스 커피=기존의 아이스 커피가 일단 커피를 내린 다음 얼음을 넣은 것이라면 이는 기구 자체에 얼음이 이미 담겨 있어 커피가 내려가면서 바로 차가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아이스 커피와는 완전히 다른 신선하면서도 풍부한 커피 향을 즐길 수 있는데 덕분에 올해 LA 매거진이 선정한 ‘최고의 아이스 커피’에 뽑히기도 했다. 한인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는 이 기구는 라밀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개당 30달러.

◇프렌치 프레스(French Press)=한인들에게도 익숙한 이 커피 추출 방법은 종이가 아닌 메탈 필터를 이용, 보다 더 강하면서도 진한 향을 즐기는 커피 매니아들에게 인기 있는 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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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프레스


◇사이폰(Siphon Brew)=한국 대학가 카페에서 한동안 유행하기도 했던 이 호리병이 달린 기구는 커피를 뜨겁게 마시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알맞다. 단시간에 뜨거운 물로 커피를 내리기 때문에 일반 핸드드립보다 향과 맛 모두 강하다.

◇클로버(Clover)=기계 이름인 이 방식은 프렌치 프레스 방식을 자동화시킨 기계로 보면 된다. LA에서 이를 가지고 있는 카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커피 매니아들은 이 커피 맛을 보기 위해 일부러 라밀을 찾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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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글 이주현 기자·사진 라밀커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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