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림같은 충주호… 과연 청풍명월 고장

2009-08-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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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 국토 종단기 <19> 충북 제천 청풍호

길가에 널브러진 깻대 “추억이 새록새록”
소원 이뤄준다는 금월봉엔 기암괴석 가득


부석사 입구 오티마을에 마을자랑 비가 서있다. 오티리 별신제는 매년 정월 열나흘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한 해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제사인데, 충청북도 무형문화재다.

“청풍명월로”를 걷는다. 제천 입구부터 ‘청풍명월’이라는 글씨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도처에 청풍명월이다. 풍광이 수려한 고장이라는 뜻이겠다. 오티길, 느티나무 길을 지나자 ‘도서출판 박물관’ 표지판이 보인다. 큰길로부터 3.5킬로 들어가야 한단다. 들러보고 싶지만 걸어서 갔다 나오기엔 너무 멀다.
길가에 깻대가 널브러져 있다. 깨. ‘깨 쏟아지는 재미’는 깨를 털어 본 사람만 안다. 어머니와 함께 깨를 털던 날이 생각난다. 깨 터는 날, 어머니는 이불보를 깔아 놓고 깨를 털었다. 막대기로 깻대를 살살 두드리면 깨가 우수수 쏟아졌다. 쏟아져 내리는 참깨를 보면서 어머니는 “워-매 이 깨 잠 봐라 깨 잠 봐라 참말로 오지다야”는 말을 되풀이하셨다.


깨꽃 피는 시절이면 목화밭에 다래도 열렸다. 깨꽃을 쪽 빨면 달큼한 물이 혀끝에 번졌고, 다래는 깨물면 상큼한 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꽃 진 자리에 깨가 열리고, 뜸부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깨도 익어갔다.

미국에 온 뒤로는 깨꽃을 본 적이 없다. 어느 해 5월, 자카란타 나무 밑을 지나가다 수북이 쌓인 보라색 꽃을 유심히 내려다 본 적이 있다. 아니, 자카란타 꽃이 깨꽃을 닮다니! 그 때부터, 보라색 자카란타 꽃길을 보면 깨꽃 피어 하얗게 흩날리던 고향의 깨밭을 떠올리곤 한다.

한적한 산길을 느릿느릿 걸어간다. 한 구비 돌 적마다 풍경이 새롭다. 멀리 숲 사이로 청풍호가 보인다. 저 호수를 충주 사람들은 ‘충주호’라 부른다. 호수를 중심으로 청풍문화재단지와 청풍랜드를 비롯,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가뭄에 물이 많이 줄었다.

김기영 낚시터, 김낙용 낚시터.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낚시터다. 매실마을, 하방골, 상방골… 마을이름이 정겹다. ‘물빛 파란 용곡리’ ‘꿈이 있는 마을 청풍 단리.’ 각양각색으로 자기 동네를 선전하고 있다.

버스 한 대가 지나간다. 옆면에 ‘책을 읽자, 미래를 열자’고 쓰여 있다. 제천시에서 운영하는 이동도서관이다. 마을을 순회하면서 책을 빌려주고 되돌려 받고 하는 모양이다. 주민을 위해 이동도서관 서비스를 실시하는 지방은 많지 않다고 한다.

황토밭 둑을 따라 젊은이가 기계를 운전하고 아주머니가 뒤따라 다닌다. 고추밭 둑에 비닐 덮는 작업이다. 아까 수산면에서 쟁기로 하던 작업을 여기서는 기계를 이용하여 하는데, 소를 몰아 작업을 하던 분들보다 훨씬 힘들어 보인다. 젊은이에게 말을 건넸더니 20세 된 대학생인데 군 입대가 며칠 남지 않았다고 했다. 스무 살, 참 좋은 나이다.

‘너와 나의 안보의식 평화통일 앞당긴다. 간첩신고 113, 112’ 제천경찰서에서 내건 대형 간판이다. 휴전선이 가까워오는 모양이다. 저런 선전이 필요 없는 때가 와야 한다. 분단에서 오는 거대한 국력 소모를 청산하지 않고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민족적 자존을 지켜나가기는 쉽지 않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의 멍에, 그것은 누구도 벗겨주지 않는다. 저절로 좋아지는 세상이 없듯이, 통일도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길가에서 노부부가 쑥을 캐고 있다. 무엇하러 그렇게 쑥을 많이 캤냐고 묻자, 쑥떡을 해 먹을 거라고 한다. 바로 옆 골짜기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개 농장 주인이다. 300여마리를 기르는데 판로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자기 농장은 특별히 닭 앞가슴을 사료로 먹이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고 한다. 닭고기를 개 사료로 먹인다?

청풍면 물태마을 ‘남한강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2010 제천국제 한방 바이오 엑스포’ 선전벽보가 곳곳에 붙어 있다. 2010년 9월12부터 10월5일까지 열릴 예정이란다.

청풍호에 유람선이 떠 있다. 호수를 빙 돌아 걸어 금월봉에 도착했다. 바라만 보아도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신령스러운 바위산이다. 기암절경이 한 폭의 동양화다. 태조 왕건, 장길산의 촬영장소로 유명하다고 했다.

어둑할 무렵 제천시청에 들어갔다. 당직 공무원이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종단하는 동안 그 지방의 자료를 얻기 위해 여러 시·군 공무원과 접촉을 했지만, 제천시청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공복’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공무원이었다. 밤이 깊었다. 내일은 강원도 영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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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월봉에서 바라본 청풍호반과 청풍대교. 강과 산의 조화가 한 폭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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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모양의 바위들이 모여 만들어진 금월봉.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단다.

<정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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