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9-04-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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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승욱이의 먹는 문제가 기숙사에선 제일 큰 고민거리다. 아침은 어차피 학교에서 먹기 때문에 시리얼과 과일주스를 먹지만 점심과 저녁에 마음에 들지 않는 음식이 나오면 굶기 일쑤다. 기숙사 영양사는 혹시나 승욱이 건강에 문제가 생길까봐 나를 볼 때마다 비타민을 집에서도 꼭 챙겨 먹이라고 신신당부다. 그래도 집에 오면 이런저런 맛난 음식을 해줘서 걱정이 없는데 기숙사 음식은 2년이 넘도록 적응을 못하고 있다.

수요일 오전에 기숙사 담당 복지사에게 전화가 왔다. 이틀동안 기숙사에서 주는 음식을 먹지 않아서 너무 고민이라고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다는 전화다. 기숙사하고 코리아타운이 멀지 않으니 수요일 저녁에도 기숙사 음식을 먹지 않으면 한국사람들 가는 마켓에 가서 입에 맞는 음식을 사서 먹이겠다고 전화가 왔다.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니 한편으론 고맙고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이다.

수요일에 별다른 전화가 없어서 별일 없이 저녁을 먹은 것으로 알고 토요일 승욱이를 데리러 기숙사로 갔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복지사가 반갑게 뛰어온다. 수요일에도 저녁을 먹지 않아 코리아타운에 마켓을 가서 음식을 사왔다고 말했다.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눈에 익숙한 마켓 봉투를 들고 온다. 뭔가를 한아름 들고 오면서 하는 말이 “이렇게 많이 사왔는데 하나도 안 먹었어” “뭘 사왔는데요?”


봉투를 여는 순간 으악~ 봉투 안에는 진미오징어, 심심풀이 땅콩과 맥반석 오징어, 모듬 술안주, 왕쥐포 등등이 들었다. “이게 다 뭐예요?”
자초지종을 물으니 내용은 이랬다. 마켓에 가서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추천해 달라고 했나보다. 일하시는 분이 영어를 잘 못 알아들은 건지 흑인 아줌마를 골탕 먹이시려고 했던건지(이건 아닌 것 같고) 알 수 없지만 한국인들의 좋아하는 먹거리를 술안주거리로 잔뜩 주신거다. 승욱이 담당 흑인 복지사 아줌마가 흐뭇하고도 기쁜 마음으로 달려와 승욱이 손에 쥐어주니 냄새 한번 쓱 맡고 바로 던져 버리더라는 것이다. 기숙사 냉동고에 내가 올 때까지 상할까 봐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거다.

까만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 웃는 얼굴로 “이거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 아닌가요? 승욱이는 안 좋아하네요. 이제 어떡하죠?” ‘아, 너무 웃기다. 네.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거 맞아요. 술안주나 심심풀이로요.’ 그런데 이 웃기는 상황을 어찌 설명해 주나.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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