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워 블로거 박현주씨의 요리 인생

2009-03-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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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바라 부시 여사도 즐겨찾아

식당 일 +요리학교 ‘2년간 씨름’
행복을 요리하는 최고의 셰프
LA 뉴욕 등 출장 강의·컨설팅도


#요리는 내 운명, 내 사랑


처음부터 그녀가 요리사였던 것은 아니다. 원래 현주씨는 숙대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하고 나이키 코리아를 거쳐 다국적 IT기업에서 영업을 담당했던 전도유망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그랬던 그녀가 현재의 미국인 남편과 사랑에 빠져 2003년 결혼과 동시에 도미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기 시작했다.

“하던 일을 계속할까 생각했죠. 그래서 처음엔 MBA를 밟을까, 남편처럼 CPA가 돼 볼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이젠 돈 버는 것 말고 당신이 행복한 일을 하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살면서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했나를 고민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다름 아닌 음식 만드는 일이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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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샌프란시스코의 요리클래스에서 미국인들을 상대로 김치 만들기 시연을 보이고 있는 박현주씨.


그래서 일사천리로 당시 그녀가 살던 휴스턴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식당인 컨트리클럽 내 레스토랑에 무조건 찾아가서 요리사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이 당돌한 동양인 여성에 의아한 눈길을 보내던 레스토랑 측도 그녀의 유려한 칼 솜씨(?)에 반해 당장 그녀를 채용했다. 이쯤에서 놀라게 된다. 아니 20대 시절을 직장생활만 했던 그녀가 단박에 그 유명 레스토랑에 보조 요리사로 채용됐다니 놀라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했어요. 대학 때부터 외식보다는 집에 친구 초대해 이것저것 해 먹는 걸 더 좋아했죠. 외국계 회사에 다니면서는 파티 때마다 제가 케이터링을 해갔는데 그 음식에 반해 나중엔 재료비와 수고비 정도만 받고 케이터링을 팔 걷어붙이고 한 아마추어 요리사였는걸요.”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들어가기 힘들다는 외국계 회사의 잘나가던 직장인이 꽤 짧은 시간에 요리사로 변신한 과정이.

거기서 그녀의 요리 열정은 끝나지 않는다. 보다 더 체계적인 공부를 위해 휴스턴 커뮤니티 칼리지 요리학교를 다녀 ‘끝내’ 졸업장을 따내고야 만다. 여기서 ‘끝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녀의 하루 일과를 보면 이해가 된다.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학교에 가 수업을 받고 다시 오후 3시부터 11시까지는 식당 키친에서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와 숙제와 밀린 집안일 하고… 이렇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과를 2년간 치러냈다.

몸은 고달팠지만 현주씨는 이 식당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이곳 컨트리클럽 레스토랑 셰프는 총 30여명. 이중 아시안은 3명이고 여성은 고작 2명이란다. 소수 중 소수였던 그녀였지만 이곳 총괄 셰프인,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공인 매스터 셰프 중 한 명인 프리츠 기스너의 눈에 들어 그의 수제자가 된다.


“요리사들이 여자보다 남자가 많은 이유도 다 체력 때문이죠. 이 바닥이 보통 힘든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거기다 전 학교까지 다녔으니 돌이켜 보면 어떻게 견뎠나 싶어요. 요리사들이 대개 몸이 고달프니까 카페인이 많이 함유된 레드불을 마셨는데 전 그걸로도 도저히 모자라 처방전이 필요한 진통제를 매일매일 먹으면서 그 시간들을 버텼어요. 너무 독하게 들리나요?(웃음) 그런데 그때는 요리가 즐겁고 좋아 힘든 줄도 모르고 지냈죠.”

당시 그녀에게 개인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남편은 요리사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끼니를 냉동식품으로 ‘연명’했다고. 그래도 불평 한마디 없이 그녀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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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 아스파라거스 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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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슬리 튜나 파스타


#잘나가는 요리사의 행복 쿠킹

이렇게 피 말리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끝에 그녀는 빠른 시간 안에 식당에서도 알아주는 셰프가 됐다. 그 컨트리클럽은 조시 부시 전 대통령도 멤버였는데 특히 바바라 부시 여사는 선데이 브런치에서 그녀가 맡고 있는 스시 스테이션의 둘도 없는 팬이었다고. 들어오면서부터 아예 접시를 들고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스시를 담으며 행복해 하는 그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요리사의 세계가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여성 셰프가 드물다는 데서 짐작했겠지만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데다 스타 셰프가 아닌 이상 낮은 임금에 시달려야 하고, 근무시간도 길다. 거기다 주말에도 쉴 수 없고 명절 역시 성수기다 보니 남들 쉴 때도 일해야 하는 노동강도가 엄청 센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독한 여정 끝 그녀는 마침내 2003년 미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요리대회인 ACF(American Culinary Federation) 주관, 요리 경연대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유명 식당에서 케이터링 프리랜서로

휴스턴에 3년을 거주하던 현주씨가 남편 직장관계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온 것은 지난 2007년. 그녀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선택한 식당은 ‘아쿠아’(Aqua). 미슐랭 별 두 개짜리 유명 식당인 아쿠아에서 그녀는 안정적인 요리사을 길을 걷다 1년이 채 못돼 더 이상 상업식당과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과감하게 식당 일을 접고 현재는 캘리포니아 에서 유명한 고급 파티 케이터링 전문회사인 ‘폴라 라둑’(Paula Le Duc)에서 프리랜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녀는 한국 유명 요리잡지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설라 테이블의 요리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그뿐 아니다. 미국인들을 상대로 김치와 같은 한국 요리도 소개하고 가르친다. 현재는 내년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나올 요리 책을 준비중이다. 한달 평균 20여건의 파티 케이터링을 소화하고, 요리강의를 하고, 요리 책을 집필하고, 블로그를 관리하는 그녀, 정말이지 그녀의 별명처럼 ‘원더우먼’이라는 이름이 무색해 보인다.

그러면서 틈틈이 LA나 뉴욕 등 대도시 식당에서 그녀에게 메뉴 선정 등 식당 오픈에 도움을 요청하면 식당 세팅을 위해 출장도 다닌다고 하니 지금도 현주씨는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주씨, 여전히 요리를 사랑하고 그 길 위에서 행복해 하고 있다. 이 원더우먼의 놀랍고 아름다운 요리 세계는 오늘도 반짝반짝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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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츠 그라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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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프로슈토 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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