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캘리포니아 명산을 찾아서- <3>매리온 마운틴

2008-09-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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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명산을 찾아서-  <3>매리온 마운틴

샌하신토 매리온 마운틴 등정에 나선 설암산악회원들.

캘리포니아  명산을 찾아서-  <3>매리온 마운틴

이곳 산행은 일부 구간에 등산로가 나 있지 않아 암벽 등반도 해야 된다.

인적마저 드문 ‘샌하신토의 백미’

등산로 없는 구간 암벽등반은 짜릿
밤새 내린 빗물 나뭇잎에 얼어붙어

1897년 가을 오후 측량국 소속 사진사인 에드몬드 퍼키스는 일손을 놓은 채 물끄러미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의 머릿속엔 지난 며칠 동안 만났던 푸른 눈의 아름다운 학교선생 매리온 켈리양이 지워지질 않는다. 측량국 소속으로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사진과 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메마른 산야를 누비던 그에게 이곳에서 만난 상냥한 매리온의 자태가 촉촉한 단비와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미소를 머금은 채 상념에 잠긴 그에게 문득 북가주에 두고 온 연인 진 워터스의 얼굴이 떠오른다. 매리온을 만나기 전까지 가장 우아하고 매력적이던 여인으로 그의 마음에 간직됐던 진의 모습이 매리온과 겹쳐진다. 갑자기 지금까지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를 스쳐간다. 거의 끝이 난 샌하신토 산맥의 지도를 마무리하면서 아직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두 봉우리에 진과 매리온의 이름을 적어 놓은 자신을 발견한다.


▲매리온 마운틴 (Marion Mountain, San Jacinto Mountains)
등반고도: 3,500피트
거리: 17마일
시간: 10시간

메리온(Marion Mountain)은 샌하신토(San Jacinto) 산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점이며 아름다운 뷰를 보여 주는 곳이지만 불행히도 등산로가 나 있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다. 그 이유로 인해 더욱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달 설암에서 한 차례 시도를 했으나 당일 산행으로는 거리가 먼 곳이어서 등정에 실패했었다. 이번에는 좀 더 효과적으로 1박2일을 시도했다.

금요일 오후 4:30분에 LA와 OC에서 한 팀씩 총 6명이 출발을 했다. 팜스프링스의 케이블카 트램웨이(Tramway)에 7시까지 도착하기로 했으나 금요일 트래픽으로 제법 길이 막힌다.

노동절 연휴 이후 겨울철에는 마지막으로 산 위로 올라가는 트램이 오후 8시이다. 매 30분마다 출발하므로 7시는 도착해야 안심 할 수 있어 걱정을 하면서 10번 프리웨이를 달린다. 다행히 7시20분께 도착하였고 마지막 8시 표를 끊으니 올라가는 사람은 우리 일행 뿐이다.

비가 올 확률이 30~40%라고 하는데 1만피트가 넘는 곳이므로 비 대신 눈이 올 가능성도 있어 일부 회원은 크램프도 준비했다. 산중턱의 트램 스테이션(Tram Station)에 도착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산을 했고 상점도 철시하여 조용하다. 야영지인 라운드 밸리(Round Valley)로 올라가는 길은 돌과 바위도 많지만 완만하면서도 잘 다져진 흙길이어서 편하다.

기온은 약 40도 정도, 조금 쌀쌀한 기운이 돈다. 약 2.3마일을 1시간20분 정도 산행하여 라운드 밸리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고 매우 조용하다. 지하수가 솟는 곳 근처에 텐트를 치고 식사준비를 했다. 버너를 2군데 피우고 한쪽에서 불고기를 굽고 다른 한쪽에서는 라면을 끓였다. 9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모두들 시장했던 탓에 음식을 끓여내기 무섭게 동이 난다.

약 11시께 잠자리에 들었는데 어느 순간인가 텐트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급히 일어나 밖에 두었던 배낭들을 텐트 안으로 옮겼다. 다시 잠자리에 누웠으나 밤새 잠을 깊이 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인다. 평범하게 들려오던 바람소리가 어느덧 질풍노도와 같은 폭풍우로 변해 우박이 떨어지듯 굵은 빗방울이 텐트를 강타한다.


산악회용 마운틴 하드웨어(Mountain Hardware) 4인용 텐트는 겉옷(fly)을 단단히 씌웠으니 별문제가 없으리라. 잠을 청하려 하지만 우레와 같이 밀려오는 바람소리는 큰 파도가 휩쓸고 지나가려는 듯이 맹렬하게 다가온다. 폭풍우 몰아치는 대양 가운데 조그만 조각배를 타고 누운 기분이다. 바람이 휩쓸고 지날 때마다 겉옷이 벗겨져 나가는 느낌이어서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없다.

어느덧 눈을 깨어보니 밖이 밝아있다. 시계를 보니 벌써 6시30분이었다. 5시 기상을 계획했었는데 등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침은 행동식으로 하고 점심에 라면을 끓여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일어나 짐을 챙기고 커피를 조금 끓이는 동안 날씨가 완전히 개었다. 판초 우의를 쓴 빗속 행군계획이 일반 산행으로 바뀌었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라운드 밸리에서 샌하신토 정상까지는 3.7마일, 예상시간은 2시간이다. 중간지점인 웰먼 디바이드(Wellman Devide)를 지나 위로 오를수록 몸통이 굵은 침엽수들로 가득한데 지난 밤 쏟아졌던 비가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나뭇잎 전체가 크리스탈로 변해버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모두 진짜 같은 가짜 보석 나무들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 아무리 잘 만든 수정 보석도 이 같지는 못하리라.

날이 개면서 온도가 오르자 나무 꼭대기부터 얼음우박들이 솟아져 내려온다.

멀리 안개바다가 가득하니 산 아래도 지난 밤에 비가 왔었나? 등산로 오른편으로는 낮게 펼쳐지는 숲속에 초원이 간간이 펼쳐지고 멀리 메말라 보이는 팜스프링스의 사막지형도 보인다.

<다음주 계속>
<설암산악회 김인호>
(Suramhik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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