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대째 가업잇는 ‘장인가족’

2008-09-0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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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퀸즈 자메이카 ‘소 유니크 쉿 메탈사’ 35년째 영업

3대째 가업잇는 ‘장인가족’

3대째 덕트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소 유니크 메탈사’의 소수명(왼쪽)씨와 윌리엄 소씨. 73년 문을 연 창업 1세 소석호씨는 8년전 타계했다.

“뉴욕에서 자기 사업을 하신 이민 1세대들은 ‘소 덕트’ 하면 모르시는 분들이 없었지요”

퀸즈 자마이카의 ‘소 유니크 쉿 메탈사(Sho Unique Sheet Metal Inc)’는 73년부터 35년이 넘게 한인 3대가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는 흔히 보기 힘든 업체다. 길고 전문적인 업체명이지만 한인 고객들에겐 여전히 ‘소 덕트’로 통하고 있으며 이름 그대로 빌딩과 업소의 에어 벤팅과 통풍 설비를 전문적으로 시공한다. 73년에 이민온1세 소석호씨는 8년전 세상을 떠났고 3남인 소수명씨가 운영을 해오다가 몇년전부터는 3세인 윌리엄 소씨가 실질적으로 업체를 맡고 있다.

가족 중 미국에 처음 온 이는 윌리엄의 큰 아버지, 그러니까 소석호씨의 장남이었다. 독일에서 광부로 취업했던 윌리엄의 큰 아버지는 뉴욕에 정착해 가족을 초빙했고 아버지인 소석호씨와 함께 덕트 사업을 시작했다. 소석호씨는 17세의 나이에 일본에?기술을 배워 한국에서는 ‘판
금’이라는 용어로 불리는 일을 했기 때문에 곧바로 일을 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어차피 영어가 짧은 한인 이민자에게는 서울대 학벌보다 갖고 있는 기술이 훨씬 유리하던 때였다. 소수명씨는 “아버지가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형님이 일을 가져오면 아버지는 제작을 하는 형태로 사
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소씨 가족이 처음 정착했던 곳도 퀸즈였고 지금의 자마이카 업체외에 노던 블러바드 108가에도 업소 문을 열었다. 한인 운영 덕트사가 유일했기 때문에 초기 뉴욕의 한인 식당과 업체들의 공사는 거의 ‘소 덕트’가 맡으며 꾸준히 성장했고 비교적 최근에는 뉴저지 킹 사우나 공사라는 큰 사업을 맡기도 했다.


소수명씨는 “만약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아버지가 가업을 잇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기술직을 천시하는 풍토의 한국, 그래서 일본이나 유럽과 달리 장인(마스터)이 탄생하기 힘든 한국에서 ‘땜쟁이’ 소리를 듣는 직업을 갖는 걸 좋아할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것. 한국과는 다른 환경이지만 두살때 이민와 미국인이나 다름없는 윌리엄이 선뜻 가업을 이은 것도 어찌보면 의외다. 대부분의 한인 부모들은 자신들의 고생으로 자녀들은 전문 사무직을 갖길 원하기 때문이다. 윌리엄씨는 “일이 재밌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를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틈틈히 아버지 일을 도왔는데 도면을 그려가며 클라이언트에게 설
명하고 밴을 타고 이곳 저곳 돌아나니며 공사하는 일이 무척 흥미롭고 재미었죠.”

사실 이 분야의 일은 냉동이나 건축 등 인근 분야처럼 전문학원이나 아카데미 등을 통해 일을 배울 수 없고 특별한 라이센스도 없다. 윌리엄씨처럼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일을 배운 인력이 귀하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는 더없이 믿음직한 후계자였던 셈이다. 가족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은 남들보다 더 힘들 수 있다. 이들 부자도 여전히 일을 하면서 심하게 다투는 적이 많다고 한다. “같은 실수를 두번하지 말라”는 대를 이어오는 단골 꾸중 사항이다. 윌리엄씨는 “아버지 세대가 하던 방식을 꼭 구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엔 체계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요즘 고객들에게 맞는 방식으로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현재 이 업체의 고객중 한인은 10%에 불과해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1세 소석호씨가 타계하기 전까지3대가 한집에 살았고 현재도 윌리엄씨의 자녀를 비롯해 3대가 함께 살고 있는 단란한 가정이기도 하다. 주소; 101-11 Jamaica Ave. Richmond Hill, 718-441-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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