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08-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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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와 메추라기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시니 당장 제일 힘든 것이 아이들이다. 방과 후 아이들만 집에 두고 병원에 가 있을 수가 없어서 학원을 알아보기로 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부터 한 곳씩 들어가서 알아보는데 학원비가 장난이 아니다. 집에서도 가깝고 아이들을 오래 봐 줄 수 있는 괜찮은 학원을 찾았다. 퇴근해서 엄마가 드실 죽을 쑤어 병원에 갔다가 집에 오면 아이들 밥을 챙겨주는 일이 왜 이리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모르겠다. 할머니표 밥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내가 해주는 밥에 궁시렁궁시렁 말도 많고 밥과 반찬도 자꾸 남기니 식탁 옆에 무서운 눈을 하고 지키고 있는 중이다.

“다 먹어, 엄마가 얼마나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만든 건줄 알아?” 전공이 식품영양이라 한식 조리사 자격증과 영양사 자격증이 있긴 하지만 엄마의 노련한 깊은 음식 맛을 따라 갈수가 없다.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언니가 올 시간이면 다시 엄마가 드실 죽을 만들어 병원을 간다. 엄마가 금방 퇴원하실 것 같지도 않은데 처음부터 너무 많은 에너지를 뽑고 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초반에 지칠 것 같다. 친정엄마가 입원하셨다는 소식이 온 교회에 다 소문이나니 여기 저기 뭔가를 도와주겠다고 전화 폭주다. 아이들 픽업을 해주시겠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고, 병원에 엄마와 함께 계셔주겠다는 분들도 계시고 참, 이리 고마울 수가.

제일 필요한 것이 반찬이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난리가 났다. 저녁밥을 짓고 있으면 누군가 ‘딩동’ 벨을 누른다. 일회용 반찬통에 일주일 먹을 반찬을 가지런히 담아 서계시는 분들이 매일 줄을 이었다. 또 친정엄마가 죽만 드신다고 했더니 매일 같이 죽이 배달되어 온다. 각종 김치에, 각종 고기반찬, 각종 밑반찬, 각종 죽, 각종 국, 게다가 각종 과일까지. 넘친다, 넘쳐. 이러다 되레 팔러 나갈 판이다.

아이들과 내가 먹어봤자 얼마나 먹는다고 얼마나 꾹꾹 담아 오시는지 모르겠다. 행여나 우리가 굶고 있을까 봐 확인 전화까지 하신다. “고기는 달달 볶아서 먹어, 김치는 아직 안 익었지? 멸치볶음이 좀 짜졌어. 밥 한 숟가락에 멸치 다섯 마리만 올려서 먹어, 국은 저녁에 먹다 남으면 꼭 끓여놓아 쉬지 않게, 간이 맞나 모르겠네. 부지런히 먹어 며칠 있다가 또 해다 줄게.” “네…네… 맛있게 먹겠습니다.” 매일매일 일회용 반찬통이 설거지통에 수북이 쌓이고 있다.

새벽부터 일어나 회사 일에 집안 일에 아이들 챙기고, 또 병원으로 뛰어다니면 살이 빠져야 하는데 되레 뚱뚱 살이 붙었다. 해다 주신 정성스런 반찬을 아까워서 다 먹고, 감사해서 다 먹고, 고마워서 다 먹고, 맛있어서 다 먹고, 해다 주신 분들의 얼굴이 떠올라 다 먹고. 민아 아줌마는 계속 먹는 중이다.

엄마가 집에 계실 때보다 우리는 밥을 더 잘 먹으니 엄마는 수술을 내일 앞두고 금식중인데 말이다. 병원 밥이 입에 맞지 않아 식사 때마다 고민을 하고 계신데 우린 집에서 이리 포식을 하고 있으니. 철딱서니 없기는 쯧쯧쯧…

엄마는 교인 분들이 반찬을 많이 해다 주셨다는 말에 너무 고마워하신다.

매일 뛰어다니는 내가 애들 밥은 제대로 먹이나 병원에 누워 있어도 맘이 편치 않다고 하셨는데 다들 염려해 주시는 것에 빨리 일어나 ‘우리 엄마표 도토리묵’을 쑤어서 빨리 돌려야겠다고 벌써부터 들썩거리신다.

우리 가정을 너무 사랑하시는 분들이 오늘도 각종 맛있는 산해진미를 현관 문고리에 걸어두시고 쪽지를 남기고 가셨다. ‘오늘의 만나와 메추라기. 오늘이 지나면 내일 새로운 만나와 메추라기가 기다리고 있어요. 남기지 말고 다 먹기!’ 배는 고픈데 왜 이리 밥이 넘어가지 않을까? 목이 메어서 그런가 보네. 그저 주신 사랑에 감사해서. 반찬을 만들면서 쏟았을 정성에 감동 받아서. 여기까지 반찬을 들고 달려와 주신 시간에 고마워서. 그러나 저러나 이 많은 사랑의 빚을 언제다 갚지?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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