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08-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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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말, 사람을 죽이는 말

엄마는 심장동맥이 얼마나 막혀 있는지를 알기 위해 엔지오그램이란 시술을 하러 수술실로 들어가셨다. 동맥이 많이 막히지 않았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뚫을 수 있기에 간단하고도 짧은 시간 안에 끝난다고 했다. 허벅지 부분에 살을 조금 절개해서 긴 꼬챙이 같은 것을 집어넣어 심장까지 들어가기에 위험하면 위험할 수도 있는 시술이다.

잘하고 계실 것이란 믿음으로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의사가 일찍 나왔다. ‘어? 간단한 시술이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네?’ 심장전문의는 수술실로 잠깐 들어와 달라고 했다. 뭔가 중요한 것을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대 위에 엄마는 지혈을 하고 계셨다. “엄마, 괜찮아? 아프지 않아?” “응, 살 것 같아”라고 말씀하시더니 바로 잠에 빠져 드셨다. 의사는 나를 따로 불러서 엄마의 심장사진을 보여주었다. “오늘 엔지오그램으로 심장동맥을 뚫지 못했습니다. 내일이나 모레 다시 수술해야 하는데요.” “네~에? 오늘 끝난 것이 아닌가요?” “네. 세 군데가 아주 많이 막혀 있어요. 오픈하트를 해야 합니다.” “오픈하트요?” “가슴을 가르고 허벅지에 있는 동맥을 잘라다가 막혀 있는 심장동맥에 이식을 해야 해요.” “……”

의사는 수술에 관한 자료를 들고 수술담당 코디네이터와 병실로 다시 온다고 했다. 곧 의사가 병실로 온다는 말에 난 어렵사리 엄마에게 지금의 상황을 말씀드렸다. 엄마도 눈을 감은 채로 눈물을 흘리고 언니와 난 말할 것도 없고. 우린 한참을 침묵하며 울기만 했다. 왜 이리 슬픈지 왜 이리 속이 상한지 왜 이리 마음이 아픈지. 심장전문의가 병실에 도착했다. 울고 있는 우리 세 모녀를 보고 놀랐는지 아주 일반적인 수술이라고 자신의 병원이 미국에서 알아주는 심장전문 병원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나의 어깨를 치며 “우리 엄마였어도 난 수술을 하자고 했을 거야” 나를 향해 윙크를 해주는데 왜 이리 웃음이 나는지.


농담을 하며 장난을 치며 수술 후에는 지금보다 더 건강해져서 엄마가 미스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며? 웃으며 병실을 나가는 인도계 의사 선생님의 뒷모습이 왠지 슬픈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듯하다. 바로 다다음 날로 수술이 잡혔다. 심란한 마음에 엄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엄마는 “수술하면 당분간 아무 일도 못하고 누워만 있어야 하는데 네가 고생스러워 어쩌냐. 또 승욱이는 어쩌고” “엄마, 걱정 마, 다 할 수 있어. 이 없으면 잇몸으로! 오케이?”

그 순간 누군가 신경질적으로 병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얘기 들었죠?” “안녕하세요. 네. 수술시간이 벌써 잡혔어요. 그런데 선생님 이 수술 정말 안전한 거죠?” “안전하지 않는데 의사가 권하겠어요?”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마음을 때린다. “수술 후에 부작용이나 그런 거 없죠?” “이 병원에서 수술하다가 죽은 사람 아직 몇 사람 못 봤어요.” “병원에 얼마나 입원하고 있어야 하죠?” “심장전문의가 뭐라고 안 해요? 3~4일 있으면 퇴원해요.” 표독스런 말투가 우리를 짓누른다. 엄마가 영어가 불편하셔서 일부러 주치의를 한국 의사로 부탁을 했는데 후회막심이다. 첫날부터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의사가 말로 상처를 얼마나 주는지 한판 붙고 싶은 생각이 굴뚝이다. ‘야, 어떻게 의사 선생님이 저러냐. 환자에게 저런 식으로 대하다니. 그것도 같은 한국 사람이. 말끝마다 네? 네? 환자 무시, 행동 괴팍, 눈빛 표독, 고자세, 질문 묵살, 건성 대답, 짧은 방문. 정말 저런 인격 장애인이 어떻게 의사가 되었을까.’ 앞으로 계속 엄마의 주치의일 텐데. 미치겠다.

인도계 심장전문의는 엄마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안심시켜 주고,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게 더 건강한 심장을 가질 거라고 희망의 말을 해주는데 한국 의사는 완전 깔아뭉개는 언어폭력을 휘두르니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전부 말이 아닌 것을 모르나? 같은 말을 해도 사람을 살리는 말이 있고, 죽이는 말이 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은 말 속에 사랑이 있고, 진심이 있다.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열리고 심장이 따뜻해지는데 사람을 죽이는 말은? 언어폭력이라고 말할 만큼? 정말 사람의 영혼을 피폐하게 하고 병들게 하는 말인 것 같다. 우리가 좀 더 따뜻한 언어를 쓰면 안 될까? 사람을 살리는 말에 뭐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니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살리는 말이 결국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기를…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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