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08-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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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냉가슴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하다. 유난히 땀을 많이 흘려서 여름을 가장 싫어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더운 LA에서 살게 되었는지 바쁜 일상과 날씨 탓에 괜히 짜증만 늘었다. 주일 오후에는 세리토스 장로교회를 가게 되어 있다. 승욱이와 함께 가야 하니 아침 일찍부터 짐을 챙겨들고 본 교회에 예배가 끝이 나자마자 부리나케 승욱이를 데리고 주차장에서 차에 타려는 순간 열쇠가 없다. 너무 서두르다보니 열쇠를 승욱이가 있었던 사랑부 교실에 두고 왔나보다. 승욱이 손을 잡고 다시 교회 안으로 들어서는데 벌써 이마에 땀을 송골송골 맺히다 못해 또로록 흐르기 시작이다.

땀범벅으로 세리토스 교회에 도착했다. 어느새 옷도 다 더러워져 있고 땀을 너무 흘려서 초라하기 그지없다. 집회를 하러 와서 이런 모습이라니.


아, 배도 고프다. 집회 갈 때는 긴장을 하기 때문에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 집회 끝나고 집에 와서 양푼에 밥을 잔득 비벼 먹는 것이 버릇이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 집회를 잘 마쳤다. 집회를 할 때는 배고픈 것을 잊어버리다가 끝이 나면 바로 배에서 꼬르륵 전쟁이 시작이다. 머릿속에서는 ‘빨리 엄마한테 전화해서 밥 좀 준비해 달라고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승욱이를 기숙사에 데려다 주면서 집에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집회 잘 마쳤어. 헥헥. 너무 배고파. 집에 밥 있어?” “음… 있을 거야.” 엄마 목소리가 이상하다. “엄마, 피곤해?” “아니, 그냥 아파. 가슴이 자꾸 조이네.” “그래? 다음 주에 병원 가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못 참겠어?” “좀 누워 있어 보고.”

승욱이 기숙사에 거의 도착할 무렵 언니가 전화를 걸었다. “민아야, 너 언제와?” “한 시간 이상은 걸릴 것 같아. 왜?” “빨리 와 엄마가 너무 아픈 것 같아.” “못 참으시겠데?” “참고 있는 것 같은데 얼굴을 보니까 안 괜찮은 것 같아. 빨리 와 빨리.” 승욱이를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나오는데 같은 기숙사에 있는 T의 부모님이 통역을 부탁하신다. 기숙사 디렉터와 의사 소통이 어려우실 때면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T의 부모님도 나를 한참을 기다리고 계셨을 텐데 엄마 때문에 가야 한다는 말도 못하고 열심히 통역을 해드렸다. 시간을 보니 도저히 함께 있어 드릴 수가 없어서 양해를 구하고 기숙사를 빠져나오는데 전화가 5분 간격으로 울린다. “어디야? 엄마가 숨을 못 쉴 정도로 힘들어 하셔” “민아야, 엄마가 이상해. 어떡하지?” “어디야, 어디! 엄마 저러다 큰일 나겠어.”
“언니, 침착해. 내가 말하는 것 잘 들어. 일단 엄마한테 기도해 드리면서 최대한 안정시키고 911을 불러. 나 갈 때까지 기다리지마, 응급실로 가야 할 것 같으니까 911 타고 가는 것이 더 빨라. 언니가 침착해야해, 911 부르고 엄마가 드시던 약들을 빨리 챙겨. 내가 집에 도착해서 가면 늦어 빨리 911 불러! 내가 10분 안에 도착할 거야.” 전화 저편에서 들러오는 아이들 울음소리가 뭔가 알 수 없는 일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주일 저녁인데도 차가 간간히 막힌다. 전력질주를 해서 집 앞에까지 달려 왔는데 진입할 수가 없다.

아. 구급차와 소방차 그리고 동네 주민들까지 번쩍번쩍. 오래 전 승욱이가 한밤중에 집을 나갔을 때보다 더 가슴이 얼어붙었다. 내 집인데 내가 들어갈 수가 없을 정도로 집 앞이 가로막혔다. 사람들과 차를 헤치고 집으로 들어섰다. 구급대원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의 병명을 물어본다.

집안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난장판이 따로 없다. 엄마를 보니 인공호흡기를 끼고 축 늘어진 몸으로 나를 쳐다본다. “엄마, 괜찮아? 숨 쉴 수 있어?” 고개를 겨우 끄덕인다.

구급대원은 응급처치를 했지만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엄마와 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달려가고 있다. 뒷좌석에 엄마는 가슴이 조이는지 계속 소리를 지르고 계시다.

왜, 왜, 이런 걸까. 이쯤부터는 해피모드로 가야 하는 것이 내 인생의 시나리오가 아닌가? 아직도 뭐가 또 남은 건가? 장속에 음식물이 없은지 한참이 지나니 뱃속에선 쓴물이 올라온다. 지금 내 상황을 맛으로 표현해 주는 듯하다. 쓰다… 참… 쓰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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