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06-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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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의 재회(상)

아침 일찍부터 승욱이를 씻기고 옷도 제일 깔끔한 옷으로 입혔다. “승욱, 오늘 누구 만나러 가는지 알아? 너 아마 깜~~짝 놀랄거다. 니가 많이 큰 거보면 그분도 깜짝 놀랄 거야. 아, 너무 기대된다. 어서 서둘러, 10시까지 간다고 했어. 그분도 널 많이 기다리고 계실 거야.” 익숙한 고속도로 길 오래간만이다. 오늘은 촬영팀과 함께 승욱이가 다녔던 BCLC 학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트리샤 선생님을 촬영하러 가는 길이다.

지난밤 늦게까지 잠을 안 자고 까불던 승욱이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자고 있다. 학교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벌써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숨이 차다. 얼마나 오고 싶었던 학교인가. “승욱, 얼른 일어나. 여기가 어딘지 알아?”


흔들어 깨우니 억지로 잠을 깨며 슬슬 짜증을 부리는가 싶더니 학교 냄새를 맡게 해주니 익숙한 곳에 온 것을 아는 눈치다. “걸어서 가자. 트리샤 선생님 어디 있을까?” 학교 안으로 들어서는데 교장선생님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어? 승욱이 왔네. 이게 얼마만이야. 어. 너무 많이 컸어. 놀라워.” 우리를 트리샤가 있는 교실로 안내한다.

“트리샤, 밖으로 나와 봐. 누가 왔는지 알아?” 교실 밖으로 나오는 트리샤 선생님은 나와 승욱이를 보며 “어머나, 세상에.” 승욱이에게 걸어오며 수화로 “안녕, 승욱, 나 트리샤야.” 잠이 완전히 깬 승욱이는 너무 감동스럽게 트리샤의 냄새를 맡으며 넓은 가슴에 안긴다. “오. 우리 애기. 너무 잘 커주었구나. 너무 보고 싶었어.” 연신 수화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놓는 트리샤와 승욱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 자체가 감동이다.

초등학교로 간지 2년만에 트리샤를 만나는 것이다. 난 몇 번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지만 승욱이는 기회가 없었다. 트리샤는 승욱이 손을 잡고 학교 여기저기를 함께 걸으며 “여기 기억나니? 그럼 너 혼자 그네를 찾아가봐.” 승욱이는 트리샤의 주문을 기억하고 정확히 그네를 찾아간다. 수화로 “그네 타고 싶어요” 라고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는 승욱이를 기쁨으로 가득찬 얼굴로 바라보는 트리샤 선생님의 얼굴을 난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얼굴이, 그 예쁘고 젊던 얼굴이 많이 상했다. 난 조심스럽게 “트리샤 그동안 무슨 일 있었어요?” “음. 좀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거의 수업을 못할 정도로 쉬는 날이 많았어요. 그런데 올해는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얼굴이 예전하고 틀려졌어요.” “많이 변했죠? 아프고 나니까 늙더라구요. 하하하…” 웃는 미소 속에 아픔이 있는 것 같다. 예전 같으면 미주알고주알 물어봤을 텐데 2년만에 만나니 좀 조심스럽다.

승욱이를 즐겁게 해주면서 우린 예전의 추억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사이 촬영팀은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카메라를 돌리고 있다. 여기저기 인터뷰를 따려고 뛰어다니고 있다. 트리샤는 승욱이의 그네를 밀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연다. “승욱이를 졸업시키고 그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잘하고 있나 찾아가 볼까 몇 번을 망설였어요. 5년간 거의 매일 보던 아이를 못 보니까 너무 이상하고 다음에 맡은 아이에게 더 집중할 수도 없고(이건 비밀이에요.) 자꾸 기력이 없어지는 거예요.”

트리샤가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처음에는 너무 오랫동안 한 아이에게 애정을 쏟아서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한참 뒤에 보니까 소망이 없어진 것을 알았어요. 매일 아침 승욱이에게 가르칠 것을 기대하며 잘 따라와줄 것을 아는 아이를 상상하며 출근했는데 그 소망이 없어진 거예요.

혼자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재미도 없고 의욕도 없어졌어요. 그리고 나니 몸이 아프더라구요.”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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