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변호사 됐을 때보다 딸 낳았을 때 더 기뻤다”

2008-06-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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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됐을 때보다 딸 낳았을 때 더 기뻤다”

풀타임 변호사보다 풀타임 엄마를 선택한 앨렌 최씨.

“변호사 됐을 때보다 딸 낳았을 때 더 기뻤다”

자신감이란 성공은 마술도 아니고 저절로 얻어지는 행운도 아니다. 성공은 모든 세세한 부분을 철저히 완성시키기 위한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노력에서 나온다. 어쩌면 평범한 인간사

알렉스·앨렌 최 변호사 부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이제 막 아버지가 된 그가 아들딸에게 들려주고 싶은말이 있다면 그건 또 무엇일까. 인생의 설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지만,
현실은 감당하기만도 벅차다.
하지만 우리들의 아버지는언제나 말한다.
인생의 꿈은 노력하는 만큼이루어진다고. 아버지의 꿈은 그다지 거창하지 않다.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 또한 대단할 것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미래를 설계한다.
아내와 딸, 앞으로 세상에 태어날 아들딸이란 조각들을
소중히 품고서 퍼즐을 맞추듯 그 꿈의 조각들을
하나 둘 맞춰간다. 인생의 퍼즐이 완벽하게 맞추어지는
날 아버지는 아들딸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큰 꿈도 작은 꿈도 노력한 만큼 이루어지는 거라고.
변호사가 됐을 때보다 딸을 낳았을 때가 더 기뻤다는
알렉스·앨렌 최 변호사 부부를 만나 그들만의 세상을 들여다봤다.

생후 10개월된 딸이 아직은 말 대신 방긋방긋 웃어 줄 뿐이건만
처음맞는 ‘아버지의 날’ 부모된 기쁨은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


이들 부부에게 내일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아버지가 된 알렉스 최 변호사가 처음으로 맞는 ‘파더스 데이’인 것.

아직은 방긋방긋 웃는 걸로 “아버지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는 말을 대신하는 딸이지만 아버지가 된 큰 기쁨을 누리기엔 충분하다.

올해 들어 잦은 출장과 산더미 같은 서류처리 때문에 아버지가 된 기쁨을 마음껏 누릴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내일만큼은 아무 생각하지 않고 아버지가 될 작정이다.

태어난 지 10개월 된 딸은 이제 통통한 두 볼에 귀여움이 넘쳐나고, 포동포동한 손발이 제법 단단해 보인다.

남편이 점점 집에서 말수가 없어진다고 투정 부리는 아내지만, 그녀도 남편보다는 딸에게 우선순위를 두는 엄마 티가 제법 난다.

“대개 변호사라는 직업이 법정공방을 벌이는 흥미진진한 승부 세계로 알고 있지만, 기업 재무변호사(Corporation Financing Lawyer)는 서류더미에 둘러싸여 리서치를 하고 거래, 협상을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합니다. 또,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치밀한 두뇌싸움을 벌이다 보면 집에 돌아와선 말하는 것 자체가 귀찮을 때도 있어요.”

34세의 알렉스 최 변호사는 올해 캘리포니아주 최대 부동산 로펌 ‘앨렌 맷킨스’(Allen Matkins Leck Gambel Mallory & Natsis LLP)의 파트너가 됐다. 앨렌 맷킨스는 240명의 변호사가 속해 있고, 그 중 절반이 파트너 변호사이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복수전공하고 USC 로스쿨을 마친 그는 일사천리로 변호사가 됐다. 하지만, 법조인으로 나 자신만을 위한 목표를 지녔던 건 아니었다.


스탠포드 대학 시절 ‘LA교육구의 다문화 교육’이란 논문으로 상을 받았을 만큼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USC 로스쿨을 다닐 때는 ‘서든 캘리포니아 로 리뷰’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또한, 형사법 부문에서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며 미국 법학상(American Jurisprudence Award)을 수상했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두각을 보였다.


USC 로스쿨 재학시절 안면 변호사 되고 데이트
남편은 가주 최대 부동산 로펌의 파트너
아내는 출산 후 엄마 역할의 중요성 깨달고
9년간 다니던 유명 로펌 접고 파트타임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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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로펌 ‘앨렌 맷킨스’의 파트너 변호사가 된 알렉스 최씨.

‘기업재무 변호사’라는 어감이 매력적이어서 로펌 입사를 결심했다는 그는 글로벌 로펌 ‘메이어 브라운’(Mayer, Brown, Rowe & Maw LLP) LA오피스에서 5년 동안 경력을 쌓았고, 4년 전 부동산 로펌 앨렌 맷킨스에 합류했다. 그것도 기업 부동산 전문 시니어 변호사로다. 이후 기업재정지원제도, 리스 파이낸싱, 메자닌 부채 등 재정거래 전문 변호사로 성과를 높였고 DLJ 부동산 캐피털 파트너, 노블 하우스 등 미 기업들은 물론 한국기업 ‘미래에셋’ 등이 주요 클라이언트로, 미국 진출사업을 추진하는 아시아 기업들에게 인기가 높다.

“남편으로 변호사로 알렉스의 최대 장점은 확고한 자신감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솔직한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감을 중요한 거죠. 단점이라면 간혹 정리정돈이 되질 않는 구석이 있다고 할까요.”

USC 로스쿨 재학시절 얼굴 정도 알고 지냈지만,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데이트를 시작한 건 둘 다 변호사가 되고 난 후였다.

첫 데이트에서 “난 앞으로 당신과 결혼해서 이 집에서 살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펼쳤던 남편이었다. 앨렌씨도 그런 그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만남을 거듭할수록 그가 지닌 확고한 가족관과 지성, 야망과 관대함은 그녀가 원했던 완벽한 이상형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함께 있으면 대화가 통했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앨렌 최 변호사가 9년 동안 다녔던 유명 로펌을 그만두고 풀-타임 엄마를 선택했을 때도 남편은 두말하지 않고 아내의 선택을 존중했다. ‘잘 나가는 변호사’라는 커리어보다 ‘가정’을 선택한 아내가 고맙다고 했다. 앨렌씨는 한국방송공사(KBS)의 9시 뉴스 앵커 및 보도본부 본부장을 지낸 박성범 전 국회의원의 딸이다. 워싱턴 DC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덕택에 미국, 한국, 프랑스 문화를 두루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 정착한 건 1985년. UCLA와 USC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됐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10년 가까이 변호사로 일하면서 성취감도 강했고 프로 정신도 투철했거든요. 그래서 딸을 낳았을 때는 처음 몇 개월만 쉴 작정이었어요. 하지만 딸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엄마의 역할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게 됐죠. 큰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변호사로 일할 자리는 또 찾을 수 있지만, 딸아이의 지나간 세월은 돌릴 수가 없잖아요. 우리 부부는 적어도 아이 셋은 키울 작정이거든요”

절실하게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녀에겐 운도 따랐다. 집에서 젖먹이 딸을 돌보면서도 일할 수 있는 파트타임 컨설팅 업무 제의를 받았고, 덕분에 육아와 커리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10개월 된 딸과 앞으로 세상에 나올 미래의 아들딸이 학교를 졸업하고 엄마의 손이 필요 없게 될 때까지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즐기는 삶. 지금 그녀가 추구하는 소박한 꿈이다.
<글 하은선 기자·사진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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