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05-3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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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다

한국에서 촬영팀이 온다는 소리에 벌써 긴장태세다. 그런 것에 반해 승욱이는 지난주나 이번주나 얼굴에는 미소만발 행동은 귀염만발이다. ‘승욱, 너는 자연다큐다 자연다큐.’ 무슨 꾸밈이나 특정연출이 필요 없는 승욱이는 촬영을 하는지 어쩐지 관심도 아니 생각도 없다. 방송작가의 요구대로 장애우 가정에 인터뷰 요청을 하려고 전화를 들었다.

“승욱이 엄마예요. 잘 지내죠?” 나의 전화에 다들 반가워한다. 일상적인 안부와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나서 ‘SBS 스페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처음에는 반가워하던 친한(?) 가정들이 정색을 한다. “안돼요. 죄송해요. 인터뷰 해 드릴 수가 없어요. 다른 가정에 부탁하세요.” “인터뷰 한다고 해서 전부 방송에 나가는 건 아니에요. 좀 해주세요.” “..........” “안되면 전화 인터뷰라도 해주세요. 그냥 미국에서 장애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교육적인 것에 관한 인터뷰요.” “승욱이 엄마, 제가 왜 미국으로 왔는지 알잖아요. 아직 저희 사돈들이나 먼 친척들은 우리 아이가 장애가 있는지 몰라요. 한국에서 방송이 나가면 전국으로 나가는 건데 알려지면 너무 곤란해져요. 나중에 우리 아이 잘 크면
살짝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몇가정이 더 남아 있기에 부담없이 다음 가정에 전화를 걸었다. “승욱이 엄마예요. 잘 지내죠?” 역시나 똑같이 말문을 연 난 또 보기 좋게 거절을 당했다. “방송이요? 그거 승욱이 같이 잘 자란 애나 나가는 거지 우리 애는 아직. 그리고 한국에 알려지면 안돼요. 미국에 아이 때문에 온 거 몰라요.” “......”


또 다른 가정에 연락을 했지만 “전국 방송을요? 그것도 한국에? 안돼요, 안돼. 괜한 동정 받는 것도 싫고 그리고 난 말해 줄 것이 없어요. 아이가 다 자란 것도 아니고 저도 이민온 지 얼마 안되는 거 승욱이 엄마가 더 잘 알잖아요.” 힘 빠진 목소리로 “네...알겠습니다.”

대실망이다. 내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미국에서 아이들 키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고 장애우들에 대한 제도와 교육에 대한 인터뷰인데. 그게 그리 힘드나? 전화도 못 받아주나? 뭐가 그리 숨길 이야기인데. 다들 이민자로 미국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지 모르나? 아이 때문에 유학생 신분으로 와서 정말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장애자녀가 무료로 교육받고 있는 가정도 있지 않은가. 그러면 이 정도 우리가 받은 것이 많다면 일부 나눠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어려운가? (이 글에 상처받는 가정이 있을 수도 있는 거 압니다. 다들 잘하고 계신데 일부 가정들의 이야기를 적은 겁니다. 오해마시길 바랍니다.)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콧바람을 식식 불고 있으니 오래전 생각이 난다. 나도 처음 승욱이를 낳았을 때 누구든 나를 아는 체 하거나 승욱이의 장애가 알려질까 봐 쉬쉬하던 나였다. 찬거리를 사러갈 때도 늦은 저녁 아이를 남편에게 맡겨두고 나갔고, 병원에 데리고 갈 때도 꽁꽁 싸메고 데리고 나갔고, 혹시나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이 승욱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면 아무 층에서나 내리던 나였다. 사람들의 시선조차도 부담스러워하던 승욱이 엄마가 아직도 남에게 장애자녀를 알릴 수 없는 다른 가정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한다고 하듯이 그 개구리가 과거의 실수나 과오나 어리석음을 다 잊어버린 것이다. ‘어이~ 민아 개구리, 니가 처음부터 승욱이 공개해서 키웠냐? 너도 매일 숨어 살았잖아. 전화도 받지 못하고 커튼도 닫아 놓고 살던 시절 생각 않나? 올챙이들 마음 좀 헤아려주세요. 네에? 그 맘 잘 알잖아요.’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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