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05-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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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작업

승욱이가 한국방송 프로그램에 나가기로 결정한 후, 무엇부터 준비를 해야 할지 일단 마음을 정리하고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했다. 승욱이가 가는 동선과 필름을 찍을 수 있는 모든 공간을 정리하고 책임자들과의 만남과 연락을 준비하고 있다. 그중에 제일 높은 턱이 승욱이 학교다.

공립학교여서 그런지 언제나 촬영불가인 곳이다. 누가 그랬던가! 일을 할 때 어렵고 힘든 일부터 헤쳐 나가라고... 학교 교감선생님 엘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중요한 일이니만큼 전화로 말하는 것보다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 약속을 정했다.


불과 몇 달 전에 촬영을 거부당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떨리는 마음은 아무도 모를 거다. 승욱이가 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교육적인 부분을 보여주기 위한 최고의 장소) 제일 신경을 많이 썼다. 언제나 친절한 우리 ‘엘리’ 교감선생님과 마주앉았다. 승욱이의 일상적인 얘기를 하다가 준비한 말을 꺼냈다. “오늘 제가 여기 온 목적은 중요한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 입니다. 얼마 후에 한국방송국에서 승욱이를 촬영하러 올 거예요. 4일만 학교를 오픈해주세요.” 눈을 동그랗게 뜬 엘리 “이유는 뭐죠?” “한국에는 장애인의 날이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장애인의 날 특집으로 승욱이가 출연을 하기로 했어요. 걱정마세요. 승욱이만 찍을 겁니다.” 아, 왜 이리 떨리는 거야.

안경너머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엘리 선생님은 입을 꾹 다물고 미소를 짓는다. “좋은 일인 거죠? 좋은 뜻으로 방송을 결정한 거죠?” “그럼요. 어떤 선정적인 것이나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저 한국에 있는 장애우들에게 승욱이를 소개하고 싶어요. 잘 컸잖아요...”

엘리 선생님이 말을 연다. “5년 전에 필리핀 아이가 우리 학교에 다녔어요. 지금은 중학교에 갔는데 그때도 필리핀 방송국에서 촬영을 하러 왔었어요.” 뭐야..촬영을 해준다는 거야, 안된다는 거야...꿀꺽... “제 친구 교사 중에 필리핀에서 온 친구가 있어요. 교육적인 부분을 많이 찍어가서 그 당시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는지 몰라요. 잘 찍어서 좋은 프로그램이 되길 바랄게요.” “아~~악. 촬영을 허락하신다는 거죠?” “잠깐, 모든 일엔 순서라는 것이 있어요. 교육구에 전화로 보고하고 공문을 보내고, 같은 반 친구들 부모님들에게도 공문을 보내서 사인을 받아야 돼요.

거기까지 제가 도와줄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학교에 절대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앗싸, 제일 걱정이 되었던 학교가 이렇게 뚫리니 다른 곳은 식은 죽 먹기?

그 다음은? 승욱이가 2세 때부터 다녔던 BCLC 학교다. 떨리는 마음으로 ‘트리샤’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송에 나가게 된 사연을 이야기 하고 인터뷰를 부탁했다. 트리샤 선생님 역시도 흥분했다. 승욱이 학교 봄방학 날짜와 BCLC 봄방학 날짜가 틀린 것을 확인하고 승욱이 봄방학 때 학교를 함께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울먹거리는 트리샤 선생님 왈 “난 승욱이를 만날 수 있는 것이 더 기뻐. 얼마나 컸을까... 너무 기대돼 가슴이 벅차.” “2년만이지? 승욱이 졸업하고 처음 만나는 거네” “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5년간 키운 승욱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트리샤 선생님도 적지 않게 몸살을 앓았나보다. 몇 차례 개인적으로 학교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승욱이와 함께 학교를 방문하는 것은 2년만이다. 설레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 다음은 와우이식 전문 스피치 선생님, 선한목자 장로교회, COF 교실, 리저널센터, 사랑의 교실 그리고 인터뷰를 따로 해 주셔야 할 곳을 미리 전화를 하고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다들 응원이 대단하다.

한국에서 오기로 한 방송작가와도 계속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어떻게 방송을 이끌어 갈 것인지 스케줄과 여러 가지 정보를 교류하던 중에 2주간 소식이 없다. 무슨 일이지? 다들 언제 촬영오냐고 묻는데 왜 한국에서 연락이 안 오는 거야? 장애인의 날이 불과 두 달 남짓 남았는데....

방송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한국에서 촬영팀이 언제 오죠?’ ‘아. 민아씨 그게 그러니까 방송을 하기로 한 방송국 내부사정으로 방송을 못하게 되었어요’ ‘네? 그래요. 그럼, 연락을 미리 주시지’
어~, 이리 당황스러울 수가. 어떻게 준비작업을 끝냈는데 우째 이런 일이. 아...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씀드리지? 앙앙앙...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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