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05-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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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책 (하)

승욱이 교육 자료를 복사해서 차에 싣고 다니던 중에 친정 아버지의 폐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충격에 휩싸인 그때 한국에 자료를 보내주기로 약속한 것도, 그리고 TV에서 보았던 여자아이도 머릿속에서 다 지워졌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남을 돌아볼 수 있는 처지도 여유도 없었다. 3년이란 시간이 지나 내가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던 그 아이의 엄마와 직접 연락이 닿은 것이다. 예지 엄마는 내가 도와 주려했던 것을 알지 못한다. 그때 이 교수님이 예지를 맡아서 교육을 시켜주었냐고 물었을 때 교수님 또한 어떻게 아이를 가르쳐야 할지 몰라 방송 후에 연락이 끊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 예지엄마가 나에게 보냈던 이메일의 내용에서 이 대목이 날 아프게 한다. ‘승욱이는 참 좋은 환경을 잘 만났다는 생각에 승욱이랑 승욱이 엄마가 너무나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속상하기도 합니다. 예지의 상황은 승욱이에 비하면 정반대로 너무 열악합니다. 좋은 교육환경을 만난 것도 아니고 예지의 상태도 더 심각하고 게다가 조기교육이 너무 늦었다는 것이 승욱이와 예지의 현재 상태가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지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처음 예지엄마의 이메일을 받았을 땐 미국의 좋은 환경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이민자로 이 곳에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한국에서 장애우를 키우는 것만큼(?) 힘든 것도 많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금의 승욱이 모습을 보고 아무 어려움이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사실 섭섭하기도 했다.

3년 전에 도움을 주려했던 아이가 예지였다는 사실을 알고 난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때 내가 도와주었으면 예지가 지금 어떻게 성장을 했을까.’ 내 마음에 질책의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왜 그랬어! 너가 조금만 신경 써줬어도 한국에 있는 시청각 장애우들이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았겠어? 너가 또 다른 승욱이를 위해 열심히 사는 거라고 그랬잖아. 도대체 지금 어디를 보고 달려가는 거야? 지금도 늦지 않았어.”

며칠을 끙끙거리다가 난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지금 내가 한국에 있는 중복장애우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제 와서 예지엄마에게 3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서 핑계를 대기보다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길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다니면서 도와드릴 형편이 되지 못한다. 나도 직장 일에, 아이 넷 키우는 일에, 집안일에 몸이 열두 개여도 모자란 판에 일일이 한 사람씩 연결이 힘드니 한 번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지갑 깊숙이 넣어두었던 한 사람의 전화번호를 꺼내들었다. 심호흡 한번하고 일단 전화를 걸어서 내 목소리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면 바로 전화를 끊는다는 생각을 일단하고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허 동우 사장님, 저 승욱이 엄마입니다.”

아…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 안녕하세요. 승욱이 어머니, 그렇지 않아도 많이 궁금하던 참이었어요. 잘 지내시죠?” 차라리 못 알아들으시면 맘 편하게 마음의 질책에서 벗어날 텐데 내 목소릴 한 번에 알아들으시네?

“사장님, 연초에 말씀하셨던 승욱이 이야기 한국 방송건으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직도 유효한가요?” “네에? 드디어 방송을 하시겠다고요? 하하하. 그럼요. 제가 알아보고 전화를 드릴께요.”

다음호부터는 승욱이가 방송 출연하는 이야기(비하인드 스토리포함)를 실어드리겠습니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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