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얼어붙은 시장에 ‘봄’ 오나

2008-04-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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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 주택 판매량·가격
3월에만 41· 24% 폭락
오퍼 몰리고 거래량 급증
일부 지역 회복 조짐 뚜렷

부동산 시장은 지역성이 강하다. 미 전국이 어떻든 내가 사는 도시, 동네의 집값은 따로 노는 경우가 많다. 내 주변의 움직임이 더 중요하다. 사고자 하는 지역의 매물과 가격 동향을 잘 살펴보고 매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봄은 전통적으로 주택시장이 약동하는 때. 올해 남가주 주택시장은 극도의 하락장을 겪으면서도 일부 지역에서는 거래가 아주 활발해 상당한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통계를 보면 참혹한 봄이지만 얼어붙은 지표면 아래로 약동의 기운이 솟고 있다고 부동산 전문인들은 전하고 있다.
이글락 지역 콜드웰 뱅커의 한 브로커는 “올해 봄은 정말 형편없다. 지난해도 좋지 않았는데 1년 전에 비해 비즈니스가 50%도 안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참담한 시절. 그러나 희망은 언제나 샘솟게 마련이다. 새싹이 통토를 뚫고 나오듯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소리 없이 거래가 속속 이뤄지는 곳도 많다. 일부 지역에서는 복수 오퍼가 쏟아지고 바이어간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볼 수 없던 현상.
좋은 매물 많고 이자율 좋고, 최상의 바이어 마켓이 조성돼 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단지 가격이 더 떨어질까 두려울 뿐이다.
꼭 바닥에 떨어진 다음에야 주택 매입에 나서겠다는 바이어라면 좀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한정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셀러들은 느긋하게 버틸 수 있으며 가격을 내리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아마도 차압 매물들끼리 경쟁해서 소진될 때쯤이면 가격도 안정될 것이다.
시장이 하락하면서 다수 셀러들은 버티지 못하고 가격을 내려주고 있다. 많은 바이어들은 바닥을 기다리며 관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3월중 거래 완료된 남가주의 주택 및 콘도 판매량이 1년 전에 비해 41%나 폭락했고 가격도 24%나 폭락해 중간 평균가가 38만5,000달러로 빠졌다. 극심한 판매 부진이 3월에도 이어졌다. 궁지에 몰린 일부 셀러들은 집을 팔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LA카운티의 3월 중 중간평균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18% 하락해 44만달러로 떨어졌다. 오렌지카운티는 20% 하락한 50만6,000달러로 집계됐다. 인랜드 지역은 한기가 심각하다. 리버사이드와 샌버나디노 카운티가 각각 27%, 28%씩 급락했다.
판매량 감소는 살벌할 정도다. LA카운티는 49% 폭락했고 오렌지는 47% 급락했다. 리버사이드와 샌버나디노는 각각 27%, 38% 폭락했다. 3월중 팔린 남가주 지역 기존주택 중 38%가 차압물 거래다.
재고를 봐도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2월 중 LA카운티 주택 재고는 무려 21.2개월분으로 어마어마한 매물이 재고로 쌓여 있음을 보여줬다. 지난 20년간 평균 8.3개월분이었고 경기가 좋았던 2003년 12월에는 1.1개월분의 공급이 있었던데 비하면 현재의 재고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된다.
폭락한 시장에서 헐값 매입의 기회는 널렸다. 예를 들어 리버사이드 카운티 헤멧의 zip 코드 92543지역은 중간 가격이 올해 1분기 중 48%나 하락해 13만9,000달러에 불과하다.
가격이 이처럼 떨어진 인랜드 지역의 차압 주택들은 첫 주택 매입자들에게는 절호의 기회. 집값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뜻을 이루지 못했던 첫 주택 매입자들이 지금 샤핑에 열심이다.
인랜드 밸리의 한 부동산 에이전트는 자신의 리스팅 50개 중 75%가 차압물이라며 “복수오퍼가 들어오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전했다. 일례로 리버사이드 카운티 메니피의 은행 론 50만달러가 남아 있는 한 3베드룸, 4 배스 하우스는 32만달러에 리스팅됐는데 즉각 오퍼 전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집은 요구가 그대로 에스크로 중이다. 이런 일은 최근 1~2년 사이에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인랜드를 벗어나면 여전히 셀러들은 지난 2005년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많은 셀러들이 여전히 바이어가 거들떠보지도 않을 가격을 고집하고 따라서 오퍼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시장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래를 이끌어내려는 셀러들도 있다. 이런 셀러들은 바이어가 자금이 모자라면 클로징 코스트를 대신 내주면서라도 거래를 성사시킨다.
시장이 얼마나 어려운지, 웬만히 수용하지 않고서는 못 판다. 웨스트코비나의 한 주택의 경우 2007년 2월 60만달러에 나왔는데 안 팔리자 이 집 주인은 가격을 계속 내렸다. 55만, 그 다음은 48만, 46만으로 내렸고 지난 8월에는 43만달러로 내렸다. 올 1월 44만달러로 겨우 팔았다.
융자도 걸림돌이다. 한 첫 주택 매입자는 1년 전부터 오픈하우스를 줄곧 다녔지만 융자 단계서 일이 잘못돼 번번이 거래가 무산됐고 결국 부모의 도움을 얻어서 살 수 있었다.
같은 도시면서도 동네에 따라서도 차이가 많다. LA카운티의 경우 저가 지역의 집값은 고가 주택지나 파라마운트, 랭캐스터, 팜데일, 모리노밸리 등 바겐이 많은 지역보다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전혀 고통 받지 않는 곳도 있다. 베벌리힐스, 인디언 웰스, 퍼시픽 팰리세이즈, 뉴포트비치 등지는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
하지만 사정이 좋은 곳도 집 상태는 반짝반짝 빛이 나야 팔린다. 고쳐야 할 집이나 가격이 과하게 책정된 집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손볼 곳 없이 완벽한 매물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케빈 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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