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04-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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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삼손이냐?

“승욱이 머리 깎자” 미용실 의자에 앉아 있는 승욱이는 머리를 얼마나 차분하게 잘 깎는지 미용사 언니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한다. “에구. 요 나이에 다른 애들은 머리 깎을 때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데 승욱이는 왜 이리 얌전하냐. 어구 녀석.” 내가 생각해도 진짜 승욱이가 의젓해진 것 같다. 불과 3년 전 만해도 머리 깎는 날은 전쟁을 한판 치러야 할 정도로 난리를 피웠었는데 지금은 미용실 특유의 냄새를 맡으면 미소 한번 짓고 앉아 얌전히 머리를 맡기니 정말 다 키웠다는 말이 절로난다.

그래도 아무리 얌전한 승욱이라지만 마지막 뒷목부분의 잔털을 깎을 때는 어깨를 잔득 움츠리며 키득키득 웃으며 몸을 배배 꼰다.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한 달에 한번 애 넷을 데리고 머리를 깎는 날은 월중행사 중에도 큰 행사다. 진영이, 태훈이, 승욱이를 다 깎일 때까지 미용실 구석에서 심통을 부리고 있는 아이가 있으니 그 아이가 바로 승욱이형, 승혁이다. “이승혁, 너 오늘도 안 깎을 거야? 너 머리 좀 봐, 아주 정신없어 죽겠어. 넌 곱슬머리여서 머리가 길면 보기 싫어 이번엔 머리 좀 깎자. 제발…”


더벅머리를 하고 앉아서 꿈쩍도 않는다. 이리 달래고 저리 얼러도 막무가내다. “승욱이도 이렇게 예쁘게 머리 깎는데 넌 도대체 매번 왜 이래? 엄마 진짜 화날 것 같아.” 억지로 미용실 의자에 앉히니 요리 도망가고 저리 도망가고 다른 손님에게 방해가 되어서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다. 차를 타고 오면서 화가 폭발한 나는 있는 대로 소리를 질렀다. “야~ 너 어쩌면 그렇게 엄마 말을 안 듣는 거야? 어? 머리가 단정해야 사람이 깔끔해 보이지. 너 거울 좀 봐, 니 얼굴 좀 보라고?” 남들은 승욱이 엄마가 지적이고 교양이 있는 줄 알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우리 식구들이 매일 날 비디오를 찍어서 실시간으로 전국방송을 해야 한다고 한다.

큰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는데 갑자기 승욱이가 울기 시작이다. 입을 삐쭉이면서 너무 억울한 울음으로 눈물 뚝뚝 흘리고 있다. 내가 승욱이에게 소리를 지르는 줄 알았나보다. 한손은 핸들을 잡고 한 손을 뒤로 뻗쳐서 승욱이 손을 잡고 “아니야, 엄마가 승욱이한테 화난 거 어니야.” 승욱이가 내 손을 꼬집고 비틀고 손을 치우라고 성질을 부리고 있다. 집에 도착을 해서도 승욱이가 화가 풀리지 않았다. ‘삐돌이’ 녀석 한번 삐지면 오래 가는 것이 아빠를 닮은 것에 틀림이 없다. 큰아이에게 “너 때문에 승욱이까지 화났잖아. 머리 깎는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석달째 머릴 안 깎아? 왜 그래 도대체? 지금 그 머리가 멋있어? 엄마는 진짜 짜증나.” “난 이 스타일이 좋아. 왜 난 내가 하고 싶은 거 못해? 엄마가 예쁘면 다 예쁜 거야? 난 이게 멋있어.” “누가 엄마한테 말 대꾸야?” “너 손들고 20분간 서 있어”
괜히 내 성질에 못 이겨서 애를 벌세우고 있다. 큰아이의 얼굴을 보니 별로 반성하는 기미도 없다. ‘내가 뭘 잘못한 거야?’ 이런 얼굴로 손을 빳빳이 들고 있다. “이승혁, 엄마가 왜 화났는지 알아 몰라?” “몰라” “니가 삼손이냐? 삼손이야? 머리를 안 자르면 뭐 힘이 솟아?” “어. 나 삼손 같아. 머리가 기니까 힘이 세져.”

말도 안 되는 소리. 가만히 요즘 아이들 머리를 보니 트렌드인 것 같다.
남자애들 머리는 언제나 스포츠머리를 해야 한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우리 큰아들이 깨는 날이다. 3년 전만 해도 머리 깎는 날이 승욱이 때문에 골치가 지끈지끈 아팠는데 이젠 거꾸로 큰 녀석이 속을 썩이니 이리 황당할 수가. 친정엄마에게 하소연을 하니 “놔둬. 너도 그랬잖아. 너 기억 안 나냐? 초등학교 4학년 때 머리 조금 잘랐다고 며칠간 밥도 안 먹었잖아. 그래도 승혁이는 밥이라도 먹네.” 헉? 이건 뭔 소리? 내가 그랬다고? 정말? 어릴 때 난 무진장 착했는데.

난 보기 싫어 미치겠는데 그래도 인생 연륜이 있는 엄마는 느긋하다. 나도 저런 느긋함이 생겨야하는데 언제나 발 동동 소리 꽤꽥이니.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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