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동산 칼럼-부동산으로 방향을 틀다

2008-04-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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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안고 도착한 미국!
그 첫 직장인 청소회사에서 나는 정말 열심히 일했고, 결국 ‘청소하면 남문기’ 하고 인근 청소업계에서 알아줄 만큼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렸다. 이로써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은 셈이었다.

미국에 올 때 모두가 좋은 직장이라고 하던 은행을 나는 그만 두었다. 그것도 장차 은행장이 될 재목이라는 얘기를 들었으면서도 과감히 뿌리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랬던 것처럼 미국에서 나는 또 한번 새롭고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길을 택했다. CNP 메인테넌스사 파머사장은 원하는 조건은 뭐든 들어주겠다며 붙잡았으나 나는 또 하나의 나만을 위한 신화창조라는 꿈을 위해 사양했다.

보스가 특히 고마웠던 것은 내가 회사를 일으키고 키워준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꼭 이래야 되나? 자넨 내가 일생 동안 만난 수만명의 졸병들 중에서 가장 영특하고 센스 있는 졸병이었네. 이렇게 내보내지 않겠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를 몇시간, 보스는 곧 두 어깨를 으쓱 들어올려 보여주었다.


결심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뜻이었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는 것 같아 내가 농담 삼아 말했다.
“사장님! 나는 여태껏 이 회사가 내 소유의 회사라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회사도 그래서 컸습니다. 그러니 내가 다음 직장 잡을 때까지는 보스가 생활비를 책임져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내 회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월급을 그대로 달라는 것이었고 내가 언제 잡을지도 모르는 직장 잡는 날까지라고 설명을 했다.
그러나 보스는 일분도 되지 않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Why not? 다른 직업을 가질 때까지 당연히 그렇게 하겠네. 월급을 주겠어. 자넨 다음 직장을 잡을 때까지 우리 회사의 수퍼바이저일세.”
농담 삼아서 한 말이었으나 거기에 진담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열심히 일한 성공 보수로 치면 다음 직장 잡을 때까지의 월급은 빈약했다. 하지만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철저한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가.
LA는 그중 가장 번화한 도시 중의 하나다. 직장을 잡을 때까지 월급을 주는 것만도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원대한 꿈을 갖고 출발하는 내게 그것보다 든든한 후원이 달리 있을 수 없었다.

생계 걱정하지 않고 하고싶은 직장을 알아볼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런 든든한 후원하에 나는 미국에서의 내 인생의 서막을 내렸다. 그리고 곧 ‘부동산중개업’을 선택하여 내 인생의 본편이 되는 막을 조심스럽게 올렸다. 부동산학을 공부하기 위해 관련된 책을 구입하여 독학으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샌디에이고의 어느학교에서 통신 강좌를 통해 라이선스 신청에 필요한 부동산학 학점을 받았다. 나에게는 청소업이 아닌 부동산중개업에 투신해야 하는 확실한 이유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청소업을 하면서 내가 모신 옛 보스에게 동종의 사업으로 오해를 사거나, 마찰을 일으키기가 싫어서였다. 내 일생 가운데 그래도 내가 모셨던 보스를 그 이유가 무엇이든 배반하고 싶지 않았다. ‘청소하면 남문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업계에서 알아주는 존재일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그분 덕분이었다. 그런 분과 경쟁하는 것은 내가 사는 방식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망해도 나를 키워준 분에게 비수를 들이대는 짓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지켜온 인생관이다.

둘째는 자본금이 없는 상태에서 부동산중개업이 나에게 가장 유망해 보여서였다. 이것이 부동산중개업에 뛰어든 진짜 이유다. 청소업을 하면서 유심히 미국 경제를 관찰한 결과 부동산업이야말로 미국 경제의 지휘자였다. 부동산 경기가 살면 미국 전체의 경기가 살고 부동산 경기가 죽으면 전체 경기가 죽는다는 의미에서도 그랬다. 게다가 내 청소업, 즉 메인테넌스업 경험은 특히 더욱 구체적이고 따끈따끈한 현장의 데이터였다.

미국에서 한 건의 부동산 거래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작게 잡아도 20개 이상의 직업이 연관된다. 부동산을 구입하기 위해서 먼저 융자를 받아야 하는데 거기에서 은행과 융자알선회사가 개입되며, 일단 거래를 하기로 잠정 합의하면 구매자와 원매자의 가운데에서 모든 채권과 채무를 정리해주는 에스크로회사가 개입된다. 그리고 해당 부동산의 가치를 측정·평가해 주는 감정회사, 건물에 물리적인 하자가 없는지를 살피는 인스펙션회사 등이 관련되게 돼 있다. 또 거래가 완전히 성사되면 새 건물(집)을 구입해 들어가는 경우, 열에 아홉은 내가 경험했던 메인테넌스 회사나 각 분야의 독립 회사에 의뢰하여 청소, 페인팅, 카펫이나 마룻바닥, 정원 손질 등을 위탁한다. 그 밖에도 몇 가지 종류의 보험, 알람, 터마이트 등의 여러 업종에서도 부동산 거래와 연관되어 비즈니스가 일어난다. 그러니 부동산업이야말로 ‘경제의 총체적인 지휘자’라고 정의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 특성에 비추어 볼 때 메인테넌스업에 종사했던 경험은 부동산중개업에 큰 장점이 될 수 있었다. 부동산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과 거래의 관행도 내 경력을 활용하기에 용이했다.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고 행복하게 느끼는 빌딩이나 주택이 어떤 상태여야 하는지, 즉 부동산 소비자의 니드(need)를 꿰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의 내 경력도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데 필요한 소양이 될 수 있었다.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교실의 뒷자리에서 건들거리는 그룹의 리더급에 속했으나 몇 군데 학교를 전전하다 대학(건국대 법대 행정학과)에 진학한 우여곡절이 많은 사람이었다. 해병대 제대 후에 작심을 하고 고시연구실에서 전공과 조금은 다른 사법고시 공부를 했고, 그러다 학생회장이 되어 학생 활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주택은행(현 국민은행)에서 행원으로 근무하며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은행의 노조 설립에도 관여했었다. 젊은 시절의 짧은 경력이지만 그만하면 부동산중개업을 업으로 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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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기<뉴스타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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