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동산 칼럼-업계에서 인정한 청소 달인?

2008-04-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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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P 메인테넌스사는 오렌지카운티 내의 터스틴시 레드힐 애비뉴에 있었다. 톰 파머의 명함을 들고 찾아갔을 때 사무실 앞에는 청소장비와 용품들을 실은 트럭이 한대 서 있었고, 히스패닉 직원 2명이 트럭 앞에서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 히스패닉 친구의 안내를 받고 사무실로 들어가자 톰 파머가 나를 보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반겨 맞아주었다.

“잘 왔네. 기다리고 있었어.”
그는 바깥에 있는 히스패닉 친구를 불러오게 하여 소개시키면서 이 회사가 직원 2명에 사장 1명인 아주 작은 회사라고 말해 주었다. 사실 메인테넌스가 뭔지도 모르고 따라갔고 처음 시킨 일이 유리창을 닦는 것이었다. 왜 유리창 닦는 것이 메인테넌스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 당시에 한국에서는 특수한 사람이 아니면 베큠도 카펫도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때였다. 그러니 메인테넌스는 단어로서만 가능했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그러나 빠른 솜씨는 2명이 닦는 것보다 혼자서 두 사람의 두 배 정도 했으니 그러고는 거기서 바로 일당을 배로 올려주고 나를 팀장으로 임명했다.


‘이제부터는 크리스 남이 팀을 지휘한다.’ 군대식이었고 결정이 빨랐다. 탐 팔머 사장은 내가 한국인이고 해병대이기 때문에 청소 일을 잘할 것을 믿는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청소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청소를 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이 세상에 지우지 못할 때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미국 화학산업의 발전은 실로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화장실 변기에는 애시드(Acid), 벽에 찌든 때는 올퍼포즈 409(All Purpose 409) 하는 식으로, 아무리 더러운 것이라도 닦아내는 약이 있었다. 그야말로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답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어떤 사물이나 현상도 천적(天敵)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업 중에 쓸데없이 낭비되는 시간도 한국인다운 발상으로 줄여나갔다. 효율과 능률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다. 낮에 하는 빌딩청소도 많았지만 청소는 대개 빌딩에 입주해 있는 회사들의 퇴근시간이 지난 뒤, 즉 밤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직접 청소를 하는 말단 직원들은 청소를 시작한 지 두 시간 정도가 지나면 밤참을 먹으러 패스트푸드점에 가고, 또 한두 시간 일한 뒤에는 커피타임이라며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나는 그 시간만 아껴도 상당한 생산성 향상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작업 출동을 하면서 아예 인부들의 야참과 커피를 식당에서 테이크아웃해서 가져갔다.
그 당시에 청소작업은 ‘돈 놓고 돈 먹기’나 다름이 없었다. 시간이나 노력을 투자한 만큼 돈이 되어 나오는, 즉 아웃풋이 너무나 정직한 일이었다. 먹을 것 다 먹고, 쉴 것 다 쉬고 하면 두 개의 빌딩을 청소할 시간에 하나의 빌딩밖에 청소하지 못했다. 따라서 사이사이 쉬는 관행을 무시하고 일하러 나갈 때마다 인부 수만큼의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서 테이크아웃을 했더니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예컨대 10명의 인부가 4시간 동안 했던 대형 빌딩의 청소를 대여섯 명의 인부를 투입하여 두세 시간 안에 해치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더니 우리 회사의 보스가 놀라고 용역을 발주한 건물 주인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정작 놀란 것은 인부들 자신이었다. 그들은 청소라면 무조건 최저 임금만 받는다고 생각했다. 하루 저녁 일을 나가 고작 30달러를 벌면 많이 번다고 믿었던 사람들인데 나와 함께 일하면서 그 두 배, 세 배의 임금을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청소를 거의 완벽하고도 신속하게 해치우자 그만큼 신뢰가 쌓이고 일감이 밀려 들어왔다.

모든 것이 선순환되었다. 일이 재미있고, 일감이 폭주하고 소득이 증가했다. 내가 이끄는 청소팀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호세는 창문, 마티네즈는 책상, 로베르토는 화장실 하는 식으로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맡겼더니 몇 달 후에는 특별히 내가 지시하거나 감독하지 않아도 자신들이 척척 알아서 일을 했다. 그야말로 ‘신바람 청소팀’ ‘드림 청소팀’이 구성된 것이었다.

내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더러운 곳을 깨끗하게 만드는 작업이 청소다. 기왕이면 더 더러운 곳을 치울수록 일의 보람이 크다고 나는 생각했다.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이라면 기피하는 일, 선호하는 일을 구분하여 무엇을 하겠는가. 팀장인 나는 특히나 직원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도 솔선수범해서 보여주어야 했다. 팀원들은 그럴 때 나를 믿고 따랐다.


6개월이 지나지 않아 내 첫 직장인 CNP 메인테넌스사는 ‘일을 제일 빨리, 제일 깨끗하게 마무리하는 회사, 고객의 요구가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해 주는 회사’란 평판을 얻을 수 있었다. 명성에 걸맞게 일감도 하루가 다르게 증가했다. 일감을 소화할 직원을 더 채용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꼬박 4년을 한 회사에서 한 사람의 보스를 모시며 일했다. 시작할 때는 나를 포함하여 직원 3명이었으나 나와 함께 4년이 지났을 때는 인원수가 수십배 이상 증가해 있었다. 직원 수는 주간에 일하는 인원이 20여명, 야간에 일하는 직원이 40명으로 불었다. 직원 60여명 중 한국인은 50여명에 이르렀다. 한국인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말이 잘 통하고 일을 잘 해서이기도 하지만, 기왕이면 나처럼 일자리 급한 한국인들에게 더 많은 자리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CNP 메인테넌스사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자 청소업계 스카우터들이 나를 스카우트하려고 줄을 대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스카웃이 아무리 좋은 조건을 준다 해도 옮겨가지 않았다. 어떤 이는 몇 배의 임금을 준다 해도 소문조차 내지 않았다. 옮긴다는 그 발상 자체가 자존심의 문제였다고 생각했고 의리를 변한다는 건 목숨을 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어떤 것이든 나쁜 도둑질이라도 가르쳐 준 은인을 배반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살아가면서 모시는 보스는 작을수록 좋고 직장 숫자도 작을수록 인격이 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청소업은 거기까지 하고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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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기<뉴스타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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