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동산 칼럼-이민 초보자의 직업, 일명 메인테넌스업?(하)

2008-04-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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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그로브의 처남 집 창고에 짐을 풀지도 못한 채 보관해 놓고 나는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공부도 좋지만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기는 했으나 그때 나는 무슨 일을 하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만용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는 퇴로가 막힌 해변에 상륙하여 총탄이 쏟아지는 적진으로 달려가서 살아남아야 하는 해병대 정신이 있었고, 은행원으로 일한 경력과 법대 학생회장으로서의 리더십도 있었고 주택은행을 다니면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배짱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생활필수인 영어도 조금은 하는 편이었다.

그런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대로 된 것일까. 우연히 귀인을 만났다. 일자리를 알아보는 틈틈이 어바인(Irvine Valley College) 도서관에 다니곤 했는데, 어느 날 도서관 벤치에서 한 사람을 만났고, 그리고 그 사람이 다른 어느 미국인 신사를 소개시켜 주었고 그 분이 “한국인이냐”고 말을 걸어 왔다.


나는 물론 반갑게 그렇다고 했다. 그는 맥아더 장군의 전속 부관을 지낸 중령 출신의 퇴역 군인으로 한국인을 보면 어떻게든 아는 체를 하고 싶다고 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일자리를 구하는 중이라고 하자, 자신이 메인테넌스(maintenance)업을 하고 있다면서, 그 일이라도 원한다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했다.

그가 건네준 명함에는 ‘CNP Maintenance Company, 사장 Mr. Palmar’라고 씌어 있었다. 공부를 더 할 목적으로 왔지만 아이가 생겼고 하루 빨리 처가 집에 얹혀사는 신세를 면해야 했다. 이민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메인테넌스업은 이민 초보자들이 별다른 기술 없이도 누구나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래서 깊이 고민하지 않고 내 첫 직업으로 메인테넌스업을 택했다.

아니 초이스가 없었다. 자생을 해야 하기 때문이고 미국에서 조금은 지나 보아야 눈을 뜨기 때문이기도 했다. 메인테넌스업이라고 하니 무슨 거창한 직업 같지만 쉽게 말하면 빌딩이나 주택을 유지, 관리하고 깨끗이 청소해 주는 직업이다. 다시 말하면 청소업, 즉 페인팅, 타일 왁스, 카펫 샴푸, 전기 수리, 정원 관리 등 건물이 깨끗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일을 통틀어서 메인테넌스업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에서 주력으로 하는 일이 건물 내의 오피스 청소나 주택청소다. 그러니까 한국식으로 쉽게 얘기해서 내가 청소원으로 일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 일에 대해 미리 이야기하면, 나는 청소 일을 직업적으로 했음에도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의아스럽게 생각하거나 가식적인 후일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진심이다. 그리고 지금도 재미있게 일했던 데에 긍지를 갖고 있다. 오늘날 매출 규모 30억달러에 이르는 기업그룹을 이끌게 된 것도 결국 거기서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세상에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는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하게 된 일이라면, 나는 재미있게 하자고 자기 최면을 건다. 재미없는 일을 억지로 한다고 생각하면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부터 비참해진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재미있게 일하려고 했고 그러다 보니 정말로 재미있어졌다.

청소를 하면 아날로그적인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일의 결과가 일한 즉시 나타난다. 한 번 쓸고 지나간 자리와 쓸지 않고 지나간 자리는 분명하게 차이가 나고, 쓸기만 한 자리와 쓸고 난 후 닦기까지 한 자리는 뚜렷이 구분된다. 이게 청소의 매력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우리 뉴스타그룹 지사를 방문할 때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직접 청소를 할 때가 있다. 화장실을 닦거나 유리창을 닦을 때면 잡념이 없어지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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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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