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세 아이 이야기

2008-03-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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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이 이야기

“할머니 핸드폰 가지고 가세요.” 진영이가 할머니를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친정엄마가 거라지 문을 닫고 나가셨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진영이가 거라지로 나가는 문 앞에 앉아 있다. “이모, 나 피나요.” “어? 피나? 왜? 어디서 다쳤어?” 할머니 핸드폰 드리려고 달려 나가다가 문턱에 발톱이 걸려 발가락이 찢어졌다. 깊이 찢어진 살을 보며 “많이 아프겠다. 천천히 나가지. 피가 멈추게 거즈 가지고 올께.” 약통에서 약을 찾으며 ‘어구. 형부가 계셨으면 우리 진영이가 저렇게 차분하게 굴지 않았을 텐데. 다쳤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을 텐데…’

약을 발라주고 업어서 2층 방으로 데려다주며 “조심히 다녀. 뛰지 말고.” “이모,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에 왜 가슴이 뭉클해지는지. 형부가 계셨으면 귀한 딸 다쳤다고 본인이 더 엄살을 떨었을 텐데. 어른이 봐도 아플 것 같은 상처에 애가 참는 것이 너무 마음이 쓰리다.


주말이면 승혁이와 태훈이가 축구를 한다. 팀이 다르기 때문에 경기시간도 각각이다. 승욱이를 사랑의 교실에 데려다 주고 난 세 아이를 따라다니며 축구경기를 지켜본다. 승혁이가 생각보다 축구를 잘한다. 끝까지 쫓아가서 골을 빼앗아 오는 걸 보면 은근히 승부근성이 있는 것 같다. 반면에 태훈이는 꿋꿋하게 자기 포지션만 지키고 있지 경기 때 열심히 뛰지 않아서 언제나 나의 지적을 받는다.

아침 일찍 승혁이네 팀의 축구시합이 시작되었다. 열 살짜리 아이들이 경기를 해봤자 뭐 그리 훌륭하겠느냐마는 각자 자기 팀을 위해 열심히 뛰며 팀웍을 다지는 모습 그 자체가 너무 좋다. 마지막 2분을 남겨두고 역전승을 한 승혁이네 팀. 애들보다 지켜보는 부모들이 더 흥분의 도가니다.

‘아. 이래서 자식 키우는 재미가 있다고 하는구나.’ 다음 경기는 태훈이네다. 열심을 내서 태훈이가 뛰진 않지만 워낙 팀원들이 실력이 좋아서 거의 매주 우승을 하고 있다. “태훈아! 공을 향해서 뛰어~ 뛰어~ 그 쪽을 막아야지!”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나만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오늘은 두 아이가 다 경기에서 이겼다.
저녁에 아이들에게 숙제를 시켜놓고 아래층에 내려와 있는데 방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난다. 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것 같다. 일단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각자 해결할 수 있도록 모른 척한다. 사건수습이 빨리되면 그냥 아이들이니까 말다툼을 했나보다 그리 생각하고 쉽게 넘기는데 어떤 날은 우리 큰아들이 징징 울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날이 빈번하니 그것이 문제다.

“왜? 싸웠어?” “진영이 누나는 언제나 태훈이 편만 들어. 태훈이도 진영이 누나 편만 들고. 내편은 없잖아.” “엄마가 승혁이 편이잖아. 너무 억울해 하지 말고 눈물 닦아.”

아이가 다쳤을 때, 아이가 아파도 참을 때, 아이가 경기서 이겼을 때, 아이가 낙심했을 때, 아이가 화가 났을 때, 아이가 무엇을 갖고 싶다고 할 때, 아이가 공부를 잘해 왔을 때, 아이가 싸웠을 때, 아이가 아플 때, 아이의 문제를 상의해야 할 때. 이럴 때마다 아이들의 아빠가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한다. 엄마인 내가 그리고 이모인 내가 아이들이 원하고 요구하고 부탁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없을 때가 제일 미안하다. 물론 세상에 아이들이 다 자기 원하는 대로 살수는 없지만 언제나 승욱이와 세 아이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아 엄마로서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가 다치고 아플 때보다 아이들에게 기쁜 일이 있을 때 애들 아빠 생각이 더 난다. 형부가 계셨으면 좋았겠다, 남편이 있으면 너무 기뻤겠다. 아버지가 계셨으면 너무 대견해 하셨겠다. 아이들이 내 품에 있을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을 텐데.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잘 키워줘야 할 텐데. 언제나 분주하고 정신없는 내가 잘 감당할 수 있을지.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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