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03-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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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이 엄마 또 사고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 ‘밀알의 밤’에서의 승욱이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고 한번 방문을 해달라는 전화였다. 점점 바쁜 시즌도 다가오고 또 북가주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가기가 힘들어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곰곰이 생각하니 승욱이 이야기가 뭐 그리 대단한가 싶어 마음을 다시 고쳐먹고 가까운 주일에 샌프란시스코를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마침 약속한 날이 서머타임이 시작되는 날이라 전날부터 승욱이를 일찍 재우고 나도 잠자리에 일찍 들려했는데 승욱이가 잠을 안 자고 새벽 3시까지 노느라 함께 잠을 설쳤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집을 나서는데 짙은 안개로 조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리고 잠에서 덜 깬 승욱이가 칭얼대기 시작이다. 밥을 먹여 데리고 나와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가까운 패스트푸드점을 찾아보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 문이 닫혀 있다. 거기다 개스도 떨어져서 일단 주유를 해야겠다 싶어 항상 단골로 가는 주유소로 들어갔다.
차에 일단 주유기 펌프를 꽂아두고 주유소 스낵샵에 들어가 승욱이 좋아하는 스낵을 하나 사고 나와서 차 안에 승욱이에게 과자를 손에 집어주고 차 시동을 켜고 바로 급출발. 2미터를 전진하자마자 “탕” 소리가 나서 일단 차를 멈춰 세우고 보니 주유기 펌프를 차에 꽂아둔 것이 생각났다. 차를 후진시키는데 주유소 주인아저씨가 화난 얼굴로 “헤이~ 어쩌구 저쩌구…” 그때까지 사태파악이 안된 나, “왜 아저씨가 나에게 화를 내지?” 일단 내려 주유기를 보니 “헉! 헉!” 말이 안 나오네? 그것을 ‘노즐’이라고 하나? 노즐이 날아가버렸네? 아저씨, 그러니까 제가 왜 이랬죠? 날아간 주유 펌프 앞부분을 들고 나에게 다가오는 주유소 사장님 얼굴이 어찌나 무서운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급하게 출발을 하다 보니. 횡설수설… 저도 너무 당황스러워서 뭐라고…” 가게 안으로 따라 들어오라는 주인아저씨.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아저씨, 제가 지금 공항에 빨리 가야 하거든요. 오늘 어디를 급하게 꼭 가야 하니까 갔다 와서 월요일 아침에 해결해 드릴게요.” 신분증 제시, 전화번호 자필로 써 놓고 머리를 숙여 백배사죄를 드리고 마침 주유소 사장님이 한국분이셔서 그리고 제가 단골인 것을 아니까 일단 오늘은 가라고 했다.
“그래도 사람 다치지 않아서 감사하고, 한국 주인이라 그리고 단골 가게에 이런 짓(?)을 해서 순순히 오늘 보내주시니 감사하고, 차도 별 손상 없어 감사하고. 그런데 오늘 샌프란시스코 가는 일은 어쩌지?” 비행기를 타고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도 걱정의 연속.
주말이라 돌아오는 비행기가 어찌나 연착이 되는지 연착되는 비행기에 갇혀 있다가 LA공항에 밤 10시40분 도착, 승욱이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30분. 집에 오는 길에 살짝 주유소에 들러보니 날아갔던 주유기 펌프가 작동을 하고 있네? 다음날 아침 새벽 일찍 일어나 출근길에 주유소를 들려 일처리(?)를 잘 마쳤다. 휴...
주유기 펌프 전체가 고장이 났으면 800달러 정도를 물어야 하고 펌프 중간에 파트 한부분이 고장이 나면 150달러 정도 든다고 했는데 다행히 파트 한 부분만 고장을 내서 150달러의 1/3만 물어달라고 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얼른 지불하고 90도 각도로 죄송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주유소를 빠져나왔다.
언제나 허둥쟁이, 준비미숙, 실수투성이, 거기다 승욱이까지 챙겨 다니려니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승욱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내 스스로 위안을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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