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가 최복림씨의 아마존 여행<4>

2008-03-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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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복림씨의 아마존 여행<4>

관광객들에게 뱀 등 동물을 보여주고 돈을 받는 원주민 어린이들.

작가 최복림씨의 아마존 여행<4>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열매를 따는 것을 보여 주는 원주민 소년.

극심한 빈부 격차 정글사회 만들어

브라질은 지금 겨울이다. 브라질은 여름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상파울루에 있을 때 그 곳 사람들은 지금이 여름이라고 했다. 미국과 반대다. 여기가 추울 때 상파울루는 에어컨을 틀어야 할 정도로 덥고 반소매를 입고 다녀야 한다. 미국이 여름인 6~8월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 눈은 오지 않지만 제법 추울 정도라고 한다.

인구 10%가 부의 80% 이상 차지
오랜 군부 독재로 인해 부정부패 만연
가톨릭 국가로 사형제 없어 범죄자 죄의식 희박

상파울루에서 비행기를 타고 4시간 정도 날아가 아마존에 들어가니 겨울이라고 했다. 이상해서 물어보니 브라질 남부는 지금 여름, 북부는 겨울이란다.
따지고 보면 아마존은 항상 더운 날씨기 때문에 여름, 겨울을 가릴 필요가 없다. 굳이 계절을 구분하는 것은 여름이 조금 더 덥고 비가 안 오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존의 중심지인 마나우스의 광장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을 밝히고 있고 성당에는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미사가 드려지고 있었다.
나는 이번 브라질 여행을 준비하면서 약간 겁을 먹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브라질은 위험한 곳이니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브라질이 안전에 문제가 많은 나라임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20년 전 상파울루와 리오 데 자네이루를 방문했을 때 한국인 가이드가 충분히 겁을 주었다. 무사히 돌아가려면 가이드 시키는 데로 하시오. 특히 리오 데 자네이루는 무법천지이니 절대로 밤에 나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살아 돌아오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하다고 했다. 그 곳은 갱들이 군대 1개 사단을 무장할 정도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경찰도 무서워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큰 사건이 발생하면 군대를 투입할 정도로 무서운 곳이라고 했다.
리오데자네이루의 높은 언덕에는 예수 동상이 있는데 나쁜 사람들이 예수를 바라보고 회개하라는 뜻에서 세워졌다고 들었다. 2년 전 이과수 폭포를 거쳐 리오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도 밤이 되면 아름다운 해변은 도독들의 무대가 된다고 들었다.
이번에 세 번째 브라질을 방문하면서 나는 브라질은 정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회는 정글이다. 정글의 법칙은 밀림 속의 동물세계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에도 존재한다.
권력과 돈을 가진 자가 약자를 지배한다. 서로 먹고 먹히는 치열한 싸움이 끊어지지 않는다. 상파울루 여행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여기는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이 도시에 오래 산 사람들은 자동차를 운전하고 어디쯤 가면 반드시 문을 잠그고, 어느 시간에 어느 도로를 가면 강도들이 유리창에 돌을 던지 후 몰려들며, 어느 우범지대 들어가면 살인청부업자들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만나는 동포마다 “당해 보기 전에는 모르니 제발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심지어 대낮에 사무실에도 무장강도가 나타나 문을 이중 삼중으로 잠그고 근무한다고 했다. 여행 중 만난 마이애미 거주 미국 할머니는 상파울루는 “더럽고 위험한 도시”라고 소신을 굽히지 않고 말했다. 대도시 치고 더럽고 소음 많고 위험하지 않은 곳이 있을까 하고 반박하자 그녀는 말했다. “상파울루는 최악이다”
브라질은 큰 나라다. 국토 면적은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과 비슷하다. 인구는 1억7,000만명, 상파울루 일원에 2,000만명이 몰려있다. 피부 색깔로 본 인종 비율은 백인이 60%, 혼혈종이 30여%, 흑인 10% 정도로 미국과 별 차이가 없다.
지역별로는 남부에 이탈리아계, 독일계 등 백인들이 커피 등 농장을 소유하고 있고 이들이 브라질 지배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농업이민 온 일본계는 커피농장에 손을 뻗치지 못하고 고등 채소류와 쌀을 재배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브라질 이민은 올해로 100년이 된다. 1908년 키 작은 오키나와 일본인 830명이 배를 타고 산토스항에 도착, 1950년대 일본계 인구는 25만명에 달했다. 현재 브라질에는 일본계 3세가 활동 중이면 인구는 150만명에 달하고 있다.
브라질에는 800만명에 달하는 아랍계가 살고 있다. 아랍계는 1900년대 초부터 레바논과 시리아 출신이 이주해 들어왔다. 이들은 당시 오토만제국 하에서 터키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브라질에서는 이들 아랍인들을 ‘turoos’라고 부른다. 상파울루에는 아랍계 상인들이 돈줄을 쥐고 백인 행세를 하고 있다.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중남미의 파나마에는 동유럽에서 몰려온 유대인들이 많다. 이들은 경제권을 장악해 수적으로는 열세지만 권력층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브라질을 정글사회로 만든 것은 극심한 빈부격차, 열악한 교육환경, 오랜 군부 독재로 인한 부정부패의 만연, 사법제도의 해이 등을 들고 있다. 브라질은 아주 부자와 아주 가난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중산층은 아주 빈약하다. 인구의 10% 정도가 부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좌익 정권이 계속 집권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는 신장됐지만 그들의 임금은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다. 노동 변호사들은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근로자들에게 고용주를 고소할 고객을 구하고 있다. 이 나라에 진출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관리에게 뇌물을 주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는데 서로 ‘해결사’라고 나서기 때문에 누구에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하고 있다. 군부 독재시대 경제가 무너져 한때 인플레가 “담배를 주세요 할 때와 돈을 지불할 때하고 담배가격이 달라졌을 정도”였다고 한다.
브라질의 공교육은 엉망이라고 한다. 정부가 처음부터 비지배층 교육에 관심을 쏟지 않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공립교육에 대한 연방, 주정부의 투자는 빈약하다. 브라질 거주 한인 중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내는 가정은 거의 없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사립학교에 보내 교육비가 가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톨릭 국가로 사형제도가 없는 브라질은 범죄자의 죄의식이 희박하다. 살인을 해도 사형에 처해지지 않으니 길거리에서 자고 어차피 못 먹고 살 사람들은 차라리 한 건 하고 감방에 있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극심한 부패로 중범을 저지르고도 형기를 채우지 않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동차의 유리창을 깨고 물건을 훔치는 일, 소매치기,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핸드백을 날치기하는 일 등 잡범은 말할 수 없이 발생하고 있다. 사법질서가 해이하다 보니 경찰의 횡포가 대단하다. 확인하기는 쉽지 않으나 경찰은 범죄자를 호송하면서 사살하고, 경찰 비리를 목격한 노숙자를 쏴 죽이고, 우범지대에 들어가 정당방위를 이유로 주민들을 살해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오래 살아온 한인들은 말하고 있다.
브라질에는 반미감정이 강하다. 자기들도 큰 나라라고 생각하면서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서기를 원한다. 브라질에 입국하려면 미국 시민들은 비자를 받아야 한다. 유럽인들은 그냥 들어오는데 유독 미국인들에게 비자를 요구하는 이유는 미국이 비자 없이 브라질 사람들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911 직후 미국이 입국하는 외국인들의 지문을 찍자 브라질도 상용하는 조치를 취했다.
브라질 최대 도시 상파울루와 오랫동안 수도였던 리오는 더럽고 위험한 도시의 악명을 유지하고 있다. 시내를 드라이브하면 수긍이 간다. 우중충한 건물, 연기를 뿜고 무질서하게 달리는 낡은 소형차들, 쓰레기로 가득한 거리, 무질서한 행상, 넘치는 노숙자들, 언제 당할지 모르는 긴장감, 나는 여행자가 방문국에 대해 나쁜 평가를 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안다.
문제는 거기 살아온 사람들이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는데 있다. 그래도 브라질에 대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구경 잘 해 놓고 이 무슨 무례한 짓인가. 브라질 사람들이 들으면 얼마나 분개할까. 나는 내가 살아온 미국, 특히 뉴욕을 생각했다. 미국은 얼마나 문제가 많은 나라인가. 뉴욕은 얼마나 지저분하고 범죄가 많은가. 맨해턴 거리를 보고 더럽고 위험하다고 말하는 외국인들이 많지 않은가. 다시 생각해 봤다. 편견 없이 신중히. 미국이 좋은 나라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디를 가 봐도 미국만큼 풍부하고 편리한 나라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비행기 마이애미 국제공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불빛이 아름다웠다. 아! 드디어 미국 땅에 왔구나 긴장이 풀렸다. 행복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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