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레오너드 그린 앤 파트너스 CFO 줄리아 장 부사장

2008-03-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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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너드 그린 앤 파트너스 CFO   줄리아 장 부사장

세법 관련 전문서적부터 고전 소설, 스릴러까지 늘 책을 벗 삼아 산다는 레오너드 그린 투자회사 줄리아 장 재정담당 부사장.

“서류더미속 숫자놀음 행복해요”

진정한 성공은 좋아하는 일 속에서 평생을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늘 서류더미 속에 파묻혀 살아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서도 불행한 그림자를 지고 사는 사람이 있다. 남들이 듣기엔 뭐가 재미있을까 싶은 숫자놀음을 하면서도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 사람, 사모투자기업 ‘레오너드 그린 앤 파트너스’(Leonard Green & Partners, L.P.)의 줄리아 장 재정담당 부사장을 만났다. CFO는 CEO로 가는 지름길로 통한다고 했던가. 미국에서 CEO의 60% 이상이 CFO 출신이다. 훌륭한 CFO 영입만으로도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까지 벌어진다. 기업에서 CFO의 위상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인수·합병(M&A)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기업가치 창조자로서의 역할이 부각되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기업·고위직 재정의 미래가치 설계 ‘1인 전문가’
클래식 음악·고전소설·인상파 그림 보며 스트레스 풀어
“유능한 CFO되려면 다양한 자기계발 중요” 조언도

장 부사장의 사무실은 웨스트우드의 고층건물에 있었다. 사무실로 안내된 순간 받은 인상은 책상이 정말 깨끗하다는 것. 대부분의 자료가 파일화되어 있고 정말 중요하게 나중에 한 번 더 봐야 하는 서류는 한쪽 구석에 정리돼 있는 듯했다. 가장 마음에 든 점은 통유리 창문으로 보이는 전망. 숫자놀음에 지친 머리를 누이기에 충분했다.
레오너드 그린 앤 파트너스는 1960~70년대 서부지역에서 LBO(인수금융)식 기업 매수의 선구자로 명성을 날리던 레오너드 그린이 설립한 투자회사.
장 부사장은 세계 최대 종합 회계·재무·자문 그룹 중의 하나인 KPMG LA 사무소에서 세법부문 시니어 매니저로 일하던 2003년, 레오너드 그린으로부터 세금·재정 담당 부사장(CFO)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10년 동안 KPMG에서 수많은 투자 파트너십과 헤지펀드, 다액 순자산 보유 개인과 기업 고위직 등의 자금 전체를 담당하는 책임자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던 그녀에겐 도전해 볼만한 기회였다.
30명의 클라이언트, 70개의 회사 자금을 주물러온 그녀가 수시로 바뀌는 세법 안에서 클라이언트를 도와주며 쌓아올린 전문지식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회사였다.
“공인회계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우연한 기회였어요. 1974년 워싱턴주 스포켄에서 EXPO가 개최됐는데 한국관 홍보를 하게 됐었죠. 한국일보 광고를 보고 지원했나 봐요. 당시 이중언어 구사자가 드물어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본부 회계를 도맡게 됐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숫자를 갖고 일하는 직업이 적성에 맞겠다 싶었죠. 아마 제가 캘리포니아 한인 여성 CPA 1호 일거에요”
1971년 도미한 그녀는 칼스테이트 LA 경영학과 회계를 전공했고 골든게이트 대학에서 비즈니스 과세 석사학위를 받았다.
정계, 재계, 교육계, 예술계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사람들의 재정을 파악하고 있다 보니, 매사에 프라이버시 유지를 가장 중시하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편이다.
미래가치의 설계자로 일하다보니 데이터를 보고 직관을 얻는 법을 터득해 갔고, 실무자들이 질 수 없는 리스크를 혼자서 감당하는 법도 감지하고 있다. ‘1 더하기 1은 2’라는 수학공식처럼 사실만 나열해야 하고, 논리와 체계를 중시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시간 관리도 철저하다. 단점이라면, 컴퓨터 이메일보다는 전화통을 붙잡고 업무 처리하기를 좋아하는 아날로그 인간이고, 여성이라면 모두 갖고 있는 샤핑 유전자가 없다는 것.
어려서부터 책벌레가 별명이었던 장 부사장은 세법 관련 전문서적을 끼고 산다. 하루도 빠짐없이 단 몇 줄이라도 책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영국 소설가 이안 맥이완(Ian McEwan). 1998년 ‘암스테르담’으로 맨부커상(Booker Prize)을 수상한 이래 이완 맥이완의 소설은 거의 섭렵했다.
데이빗 이버쇼프의 ‘덴마크 소녀’(The Danish Girl)도 좋아하는 책이고, 아직도 마지막 장을 넘기지 못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Ulysses)와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미 역사학자인 데이빗 매컬로의 저서들은 그녀의 손때가 잔뜩 묻는 책들이다. 탐 클랜시의 소설은 시간에 쫓기고 피곤함이 몰려올 때면 손이 가는 흥미진진한 책이라고 한다.
스트레스 해소법은 따로 없다. LA필과 LA오페라 음악회를 다닌 지 어느덧 25년이다. 딸이 네 살 때부터 할리웃 보울에 데려갔고, 거의 매년 오페라를 관람하러 뉴욕에 간다. 명품 핸드백 구입에는 인색해도 시즌 티켓은 주저 없이 구입한다.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음악은 모두 즐겨 듣지만, 언제 들어도 좋은 클래식 딱 하나만 꼽으라면 ‘모차르트 클라리넷 콘체르토’(Mozart Clarinet Concerto). 에사-페카 살로넨의 오케스트라 작품은 대부분 좋아하며, 살로넨의 1999년 작 ‘파이브 이미지 애프터 사포’(Five Images after Sappho)는 특별히 아끼는 곡이다.
전시회 관람도 또 하나의 스트레스 해소법. 인상주의 그림을 좋아한다. 1995년 모네 회고전을, 다음해는 드가 회고전을 관람하러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로 여행갈 정도로 미술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 에드 호퍼 같은 20세기 미국 현대미술도 사랑하며 에드 호퍼의 ‘밤샘하는 사람들’(Nighthawk)은 언제 봐도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다.
유능한 CFO가 되려면 경험을 쌓고 이론을 체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책을 넓고 깊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장 부사장은 후배들에게 ‘1인 전문가’가 되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목표가 뚜렷하고 다양한 자기 계발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사진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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