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장에서-고층 주상복합 빌딩의 매력

2008-03-06 (목)
크게 작게
요즘 새로 개발되는 프로젝트들을 보면 거의가 다 주상복합 빌딩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아래층은 상가고 그 위로는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설계하는 주상복합 원리가 최근 LA서도 눈을 뜨고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것 같다.
다운타운을 개발하기 위해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필수적으로 따라야 하는 상가들은 아래층으로 설계한다. 대형 마켓이 입주하고 여러 개의 커피점, 식당, 선물점들이 함께 들어서면서 젊고 활기가 넘치는 매력적인 삶의 공간으로 분위기가 확 바뀌어 가며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 코리아타운에 지어지는 고층건물들은 물론 새로 지어질 건물들도 모두 주상복합 컨셉이다.
80% 이상의 미국인들이 도시에 살고 있고 도시 안에 지어지는 고층 콘도로 몰리고 있는 현상은 시대와 환경적인 요인과 무관할 수 없음을 본다.
그저 단순히 가격이 싸기 때문에 콘도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보통 단독주택보다 비싼 콘도들은 얼마든지 있다. 안전문제에 신경을 쓸 필요가 적고 자유롭게 들락거리며 며칠씩 집을 비우고 여행도 다닐 수 있는 좋은 점도 많이 있지만, 다른 심리적인 이유도 있다는 것이다.
개인주의적인 현대인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외로움이 그것이다. 나이 들어가는 베이비부머 세대나 아이들이 떠난 텅 빈 집에 남은 부부들, 그리고 능력 있는 싱글들이 콘도를 좋은 생활공간으로 여기는 이유가 편리함을 추구하는 단순한 이유를 넘어서 꽤 설득력 있게 들려온다. 여럿이 함께 사는 이웃을 잠재의식은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을 테니까.
이제, 사람들은 출퇴근으로 길에다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고, 장보고 샤핑하는 일로 멀리까지 움직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커피 한잔 사 마시러 한참을 가길 원치 않고, 일삼아 운동하러 차를 타고 원정 가기를 원치 않는다. 모든 것이 가까이 있기를 원한다. 바쁜 생활 속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또 똑똑한 빌딩을 원한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가능하고 최신 고성능 시설의 주거공간을 원한다. 새로 지어지는 빌딩들은 웬만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스마트하다.
빠르고 편하고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맞춰 온갖 기능과 성능 그리고 예술적 돋보임까지 탁월하도록 끝 모르는 변화를 추구하는 설계가, 건축가, 엔지니어, 개발업자들의 시도가 눈부시도록 현란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새로운 스타일의 건축 르네상스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새로운 개념의 주상복합(multiple use) 개발은 단일 종류의 건물 개발보다 아직은 넘어가야 할 산들이 많다. 힘들고 어렵고 시간 걸리는 일들이 많다. 조닝 허가가 쉽지 않고 경험이 없는 해당 관청의 검사가 시일이 더 걸린다. 늘 처리하던 익숙한 규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반응이 쉬울 리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융자가 어렵다. 복합건물을 융자해 주는 은행은 많지도 않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조건이 까다롭고 이자가 높고 시간이 더 걸리는 어려움이 있다.
인구밀도가 높아가면서 생기는 문제들이 한 두 가지랴마는 특히 이곳 LA의 대중교통 수단은 문제 중의 문제다. 지금도 숨 막히는 도로사정에다 갑자기 몇 백대씩 자동차가 그 길로 쏟아져 나온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저런 것들 다 감안해서 시정부가 허가하고 진행되는 거라고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앞으로 들어설 커다란 프로젝트들까지 생각하면 길에서 보낼 생각에 미리 아찔해 진다.
복잡한 환경과 빠른 속도 속에 사는 우리들은 오히려 주거환경 만큼은 그 반대이기를 원한다. 친환경적이고 여유 있는 공간에 느긋한 양질의 삶을 원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빌딩 코스트는 더 오르게 되고 소비자는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되고 결국은 더 일해야 되고 더 바쁘게 더 분주하게 살게 된다. 그러다 정말 원치 않는 쳇바퀴 속에 어쩔 수 없이 빨려 들어가게 되고 마는 건 아닐까?
현기증이 날 만큼 빠르게 정신없이 바뀌어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도 똑똑해 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나도 모르게 그 쳇바퀴 속으로 말려들지 않도록 바로 깨어 있어야 한다. 편하고 안락한 주거공간 마련과 유지를 위해 숨이 차도록 헐떡거리며 바퀴를 돌려야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자제의 힘이 필요한 때다.
초현대식 고층 빌딩의 쾌적한 거실에서 할리웃 사인이 보이는 산을 보며 아침을 열고, 다운타운의 야경에 가슴 설레며 잠이 드는 꿈을 꿔보는 지금이 마냥 행복한 시간이다. 커피 향이 향기로운 아침이다.
(323)541-5603
로라 김
<원 프라퍼티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