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 바라보기- 남편에게 쓰는 십일 년까지의 일기

2008-03-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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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내게 말했듯이 결혼하고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나 또한 결혼 전에는 요즘의 아가씨들처럼 지금보다는 고왔고, 멋을 내는데 모든 신경을 썼으며 누구보다 더 결혼에 대한 해맑은 꿈이 많았고, 내가 만나게 될 남편에 대한 희망사항도 어떤 아내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희망사항도 참 많았습니다. 그런 내가 결혼하고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나는 당신과 함께 걸으며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네, 나는 당신이 내게 말했듯이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가장 먼저 당신이 공부하며 지금의 자리까지 오는 동안 나는 누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냈고, 내가 남편에게 받고 싶었던 그 시간들조차도 나는 당신의 미래에 반납했습니다. 신혼부터 지금까지 나는 당신을 보고 자려다 뜬 눈으로 밤을 새기 일쑤였고, 미국에 오기 전까지는 늘 혼자 저녁을 먹고 늘 나는 혼자 걸어 다니다 찬 기운 도는 집에 들어와야만 했습니다.
나는 결혼은 했지만 공부하는 당신 덕분에 누구보다 더 늘 혼자였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당신이 또 다른 공부를 준비하는 사이 아기를 갖은 나는 배불뚝이가 되어 뒤뚱거리며 혼자 먹고 싶은 것을 찾아다녔고, 아르바이트 하고 난 후 돈을 받는 날이면 바빠 보이기만 하는 당신의 눈치를 살피며 같이 먹자고 불러 임신 중에만 먹고 싶었던 그 회덮밥 한 그릇이 나의 행복이었습니다.
공부하는 당신 덕분에 나는 임신 내내 임산부 속옷 대신에 당신의 러닝셔츠를 입고 다녔고, 나는 당신에게 내가 받은 구두티켓으로 좋은 구두를 사주어도 배가 점점 부르며 발이 퉁퉁 부은 나에게는 동대문 시장에서 건진 오천 원짜리 신발조차도 나를 열두 번을 생각하고 사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날들도 당신의 수업을 생각하여 거의 혼자 다녔고, 조산기로 응급실에 갔어도 또 당신 수업 걱정에 당신을 학교로 보내고 혼자 덩그러니 남아 흰 벽을 쳐다보다 털레털레 집에 왔었고, 드디어 내가 아이를 낳은 날조차도 나는 당신은 공부하느라 피곤할 것이라며 집으로 보내고 혼자 막 태어난 아기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나는 또 다른 밤을 새웠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와 내 부모님 두 분은 당신의 지금을 위하여 모두 셋이서 아이를 키웠고, 그 수많은 시간들을 보내고 당신은 우리를 데리고 미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칠년이 흘렀습니다. 그 칠년 동안 나는 늘 하던 대로 나를 위해 쓸 줄은 전혀 모르고, 아이 웃음 하나만 보며 시간을 지내며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부모님과 동생에 대한 유난한 그리움으로 당신은 모르겠지만 참 많이 혼자 울었었습니다.
그러다 나는 그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혼자 조물조물 만드는 인터넷 칼럼을 쓰며 그리고 책을 만들며 남이 쓰던 물건들을 싸게 사서 집을 꾸미며 나는 어느덧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과 스스로 기쁨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바라던 모든 것들을 이제 나는 내가 만든 내 시간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만 이렇게 지내었다 생각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우리 사이에는 나도 당신도 서로에게 바라는 또 다른 희망사항이 생겨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이 내게 바라는 희망사항을 묻기 전에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말하는 우리를 위하여 했다는 그 공부 외에 나와 산 십일 년 동안 남편으로서 무엇을 했습니까? 나는 남들이 보기에는 매일 집에만 있는 유학생 와이프일지 모르지만 나의 그 시간도 내게는 당신을 생각하며 견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옆집 할아버지에게도 들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말한 내 마음들도 늘 바빠서 잊어버렸다고 말합니다. 내가 당신처럼 연구를 하지 않아서 바쁘지 않아서 나는 기억하고 무언가 해 주려고 하는 걸까요? 이는 당신이 생각하는 열정적인 사랑의 모습은 아닐지 모르지만 분명 이것은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인 내 마음입니다.
나는 말합니다. 당신이 지금 알고 있는 지식은 나의 긴 외로움과 바꾼 것이고 당신이 이 자리에서 누리는 그 기쁨만큼 나는 정말로 참 많이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내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먼저인지 나는 일기장에 당신의 이름으로 물음표를 남겨 놓습니다.

김정연
<화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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