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장에서-스탑 & 고 !

2008-02-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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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깜깜한 새벽, 모처럼의 새벽기도 참석으로 설레던 마음은 노란불이 빨간불로 바뀌는데도 서둘러 달리게 했고 순간, 무인자동 감시카메라는 제 역할을 놓칠 새라 번쩍하며 찰깍 찰나를 찍어버렸다. 실로 섬짓한 섬광이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틈틈이, 정말 티켓을 받는 걸까? 왜 하필이면 그 길을 택했을까? 벌금은 얼마나 될까? 보험료는 또 얼마나 오를까? 운전학교를 가야 하나? 그렇게 꺼름직한 생각들은 기도를 끊으며 자꾸 삐죽 삐죽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래 하나님 법만 중요한 게 아냐. 사회법도 제대로 지키라구.” 하는 당연한 깨달음이 오면서 그런대로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부실 서브프라임으로 미금융계는 물론 전세계가 흔들리고 세계 굴지의 투자회사들이 고전을 하는 거대한 불황의 늪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거센 불경기의 바람에서 작디 작은 우리는 어찌 견뎌내야 하는가? 정부가 긴급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일뿐 우리 서민들에게 이렇다 할 정책으로 다가오는 것은 없고 위기감만 팽배할 뿐이다. 여기저기 빨간 신호등이 켜지고 있는데 어디쯤에서 서야 하는 걸까?
살아가는 동안 멈출 때와 나아갈 때를 제대로 알면 얼마나 좋을까? 멈출 때에 우왕좌왕 하지 않고 정확히 서며, 또 나아가야 할 때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거침없이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반듯하고도 경쾌한 모습이 될까?
멈춤이란 무얼까? 달리다가 넘어져서 멈추기도 하고 미리 장애물을 보고 서기도 한다. 멈춤이란 쉼표다. 멈춤이란 숨고르기다. 멈춤이란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가파른 길을 갈 때는 쉬었다가 숨을 고르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갈 길을 가늠해 본다. 멈춰 서야만 앞을 바라볼 수 있다. 바로 갈 것인지 돌아갈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이다. 멈춤은 힘을 키우고 내일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내일을 위해 씨를 뿌리는 시간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잠깐 서서 생각해 보자.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잘 못 가는 길인 줄 알면서도 머뭇머뭇 멈추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고 있지는 않는가? 떨치지 못하는 불안과 걱정 근심 속에서 계속 낭떠러지를 향해 가는 줄 알면서도 손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는가? 여태까지 지켜온 자존심과 체면에 발목이 잡혀 구렁텅이를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나를 바라보는 선한 눈망울에 못 견뎌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오히려 쉽다고 생각지는 않는가? 여기서 멈춰 서야 한다. 눈을 들어 산을 보자.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미국법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고 팽개쳐 두지 않는다. 합법적으로 얼마든지 해결하고 구제 받을 수 있는 방법과 길이 있는데도 한국에서 빚진 자들이 당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쉽게 여기 법을 믿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끌어않으며 버텨보려는데 문제가 있다. 물론 책임감도 중요하고 겸손도 중요하지만 길을 두고도 모르고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면 일단 멈춰 서서 다시 서 있는 자리를 점검하고 떠날 필요가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멈춰서고 다시 나아가는 때를 아는 분별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건 안 원하건 서야할 때는 서야 한다. 냉정하고 침착해 져야 한다.
도착하는 시간이 조금 늦더라도 바로 가야 한다. 조급함을 이기고 여유를 가져 보자. 그럴 때 찾아오는 분별력과 지혜는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지도 모른다. 어려운 지금을 헤쳐나가는 용기를 가져보자. 그 속에서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고 내게 주어진 일의 가치와 사명을 깨닫는다면 삶의 신호등은 분명 밝게 켜지리라 믿어본다.
번쩍하며 찍힌 사진은 옷의 바느질까지 보일 정도로 세밀하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해서 두번 다시는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하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로 받아들여졌다. 자그마치 381달러라는 거액의 벌금을 내면서 그래도 이번 장마로 여기저기 파인 도로공사 복구비로 내 돈이 쓰여지겠구나 생각하며 쓰린 가슴을 위로해 본다. 스탑 & Go! 설 때 잘 서고, 갈 때 잘 가는 지혜의 삶을 살고 싶다.
(323)541-5603
로라 김
<원 프라퍼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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