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주강사라구요?

2008-02-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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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가주밀알의 밤에 가기로 한 날짜가 다가온다. 점점 부담은 가중될 무렵 북가주밀알 단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비행기표를 예약해야 하는데 가까운 공항이 어디죠?” “온타리오 공항입니다.” “밀알의 밤 홍보를 위해 한주 일찍 와서 인터뷰를 해야 되요. 그리고 이번에 단독 주강사인 거 아시죠? 승욱이 엄마가 한 시간을 이끌고 가셔야 해요.” “허걱, 주강사라구요?” “잘 하실 겁니다. 부담 갖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이끌어가 주세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걸 어쩌지? 이제 와서 못 간다고 하면?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갑자기 소심해진 나. 울고 싶은 나. 도망가고 싶은 나. 미치고 싶은 나. 내 마음속에 성격 나쁜 여러 명의 민아가 싸우고 지지고 볶고 난리가 났다.
받아놓은 날짜는 얼마나 잘 가는지 홍보를 위해 샌호제로 가야 하는 날이 코앞이다. 아침 일찍 부지런을 떨며 승욱이 기숙사로 향했다. 어라?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폭우로 바뀌고 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고속도로에 차들은 모두 거북이로 변했다. 속이 타기 시작이다. 거기다 승욱이 아침 먹일 것을 사기 위해 버거킹에 들어가려고 하니 비 때문에 한 블럭이 정전이다. 시간은 계속 가고 기숙사에 도착해서 승욱이를 안고 뛰었다. 무슨 일인지 엄마가 자신을 번쩍 안고 뛰니 뭔가 신나는 일이 일어난 줄 알고 안고 있는데도 펄쩍펄쩍 뛰고 까르르 신나게 웃는다. ‘으구. 철없는 아들. 그래도 우는 것보단 낫지.’
비가 어찌나 세차게 오는지 창문에 달려 있는 와이퍼가 날아가려고 한다. 북가주 밀알에 전화를 걸었다. “비행기를 못 탈수도 있습니다. 비가 아주 많이 와요. 기도해 주세요.” 비행기 출발시간이 오전 11시인데, 시계를 보니 10시30분이 다 되어간다. “아. 하나님, 저 비행기 타야합니다. 네. 지난 몇 주간 부담감으로 마음이 복잡해서 투정부린 거 제가 잘못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잘 할 테니까 제발 비행기 타게 해주세요. 우리가 오늘 못 가면 하나님도 손해 보시는 거 아시죠? 제가 주강사라잖아요.”
멀리 온타리오 공항이 보인다. 고속도로에 내려서 공항 안으로 진입하고 있을 무렵 어? 기적이 일어났다. 온타리오 공항 하늘만 뻥 뚫려서 하늘이 파란 것이 아닌가? 기도응답이 이리 빠를 줄이야. 급한 마음에 주차장에 들어서긴 했는데 아뿔싸. 너무 먼 곳에 주차를 하는 바람에 승욱이를 데리고 뛰기 시작했다. 공항 위로는 비가 안 오는데 주차장은 비가 어찌나 퍼붓고 있는지. ‘바보.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도 이용을 못해요. 쯧쯧쯧.’
큰 가방에, 내 핸드백에, 승욱이 가방에 거기다 승욱이를 손에 잡고 뛰었다. 내 재킷을 벗어 승욱이에게 덮이고 뛰고 난 오는 비를 온몸으로 다 맞고 뛰었다. 공항 안으로 들어가서 항공사 카운터에 몸을 날렸다. 그 시간이 10시50분이다. 직원이 직접 밖으로 나와 짐을 부쳐주고 수속까지 다 마쳐주었다. 게이트까지 빨리 갈 수 있게 승욱이에게 휠체어를 주는 바람에 검색도 빨리 마치고 비행기까지 일사천리로 탑승~
비행기 안에 들어서니 맨 앞자리 두 자리가 우리를 위해 비어 있었다. 창문을 통해 나와 승욱이의 모습을 보니 완전 물에 빠진 생쥐모습이다. 주강사라는 말에 한껏 머리에 신경을 쓰고 옷도 다려 입고 화장도 뽀얗게 하고 집을 출발했건만 내 모습은 완전 초라함 그 자체다. 하지만 이렇게 비행기를 탔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가. 열심히 함께 뛰어준 승욱이에게 감사하고 비행기를 붙잡고 있어준 항공사 직원에게 감사하고...
주강사라고 겉모습에만 신경을 쓴 나를 이런 모습으로 보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 겸손하게 가라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가라고, 이런 환경을 오늘 허락하신 걸 안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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