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억의 명화-‘베를린 알렉잔더플라츠’

2007-11-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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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득세전 베를린 3류 인생들의 삶
총 14부작, 15시간 반짜리 대하서사극

전후 신독일 영화사조의 으뜸가는 감독으로 1982년 36세로 요절한 연극과 TV와 영화감독이자 각본가였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1980년작. 15시간30분짜리 대하 서사극이다. 나치가 득세하기 얼마 전 부흥하는 베를린시와 그 지하세계에서 버러지 같은 삶을 사는 인간 군상들의 얘기를 억척스럽게 운이 나쁜 한 전과자인 프란츠 비버코프를 통해 장대하고도 심오하게 묘사했다. 성격 탐구영화이자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이야기인데 원작은 알프레트 되블린의 소설로 1980년 독일 TV를 통해 방영됐다. 모두 13편의 에피소드와 종결부로 구성됐다.
1927~1929년 베를린의 어두운 지하세계에서 연명하는 주인공 프란츠 비버코트의 이야기다. 그는 자기를 배신하려는 연인 이다를 살해해 4년간 옥살이를 하고 출옥,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하나 개인적인 성격의 취약성과 자기 주위의 불량하고 파괴적인 친구들 때문에 여전히 범죄와 천한 삶을 이어가게 된다.
프란츠는 정치에 무관심한 곰처럼 덩지가 큰 남자로 불같은 폭력적 성격을 지녔으나 무해한 인간. 여복은 있으나 다른 운은 따라주지 않는 프란츠는 갱생을 꿈꾸지만 그의 이런 결심은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주는 사회적 경제적 압력 때문에 끊임없이 무산되고 만다.
파스빈더는 작품 속의 많은 사회에서 추방당한 자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다루면서 이들 각자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주위환경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프란츠를 통해 집요하고 치열하게 묘사하고 있다. 길에서 타이클립을 팔아서라도 정직하게 살려고 애쓰는 프란츠가 우유부단한 성격과 주위의 분위기 때문에 거의 마지못해 범죄를 다시 저지르는 과정을 보면 그에게 깊은 동정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아무 희망도 없이 끝나는데 프란츠역의 귄터 램프레히트가 해저 깊이 닻을 내린 듯한 무게 있고 심오한 연기를 한다. 이밖에도 한나 쉬굴라, 바바라 주코바 및 엘리자베스 트리세나르 등이 나온다.
일생에 한번은 꼭 봐야 할 위대한 영화로 1931년 같은 얘기를 영화(89분)로 만든 것과 함께 Criterion이 DVD로 출시했다. 125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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