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승욱이 같은 자녀가 있나요?(하)

2007-08-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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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펴고, 시선 고정하고, 목소리는 강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말을 이어나갔다.
“S씨, 승욱이를 두 번이나 만나셨다고 하셨는데 그때 교실 분위기는 어땠나요? 조용한 분위기였나요? 어느 위치에서 승욱이를 부르셨죠? LA통합 교육구 청각장애 담당이시면서 최소한 와우이식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으신가요? 제가 보내드린 자료는 읽고 오셨나요?”
승욱이는 시끄러운 장소에서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소리는 구분해서 듣지 못한다. 게다가 소리를 여러 채널로 듣기 때문에 소리의 원근감이 거의 없다. 오른쪽에서 부르는지 왼쪽에서 부르는지 어디서 부르는지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모든 분들은 다 승욱이에게 최상의 교육을 시키기 위해 모인 팀입니다. 여러분들이 자리에 앉아서 그저 자료 몇 장 가지고 결론짓고 최소한의 서비스를 해 주면서 모든 것을 다 해준 양 할 아이가 아닙니다. 와우이식이 뭔 줄 아시고 다들 이 자리에 앉아 계신 겁니까? 여기 저를 빼고 열 분의 선생님들이 앉아 계십니다. 이 중에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귀 뒷부분을 전부 절개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듣게 해주려 인공 와우란 걸 시술시킨 부모가 여기 계십니까? 보수적이고 벽이 높은 UCLA에서 최초로 중복 장애아동으로 와우이식을 받은 아이가 있습니다.”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다들 움츠리고 있다 못해 고개를 숙이고 숙연해 있다. 난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1년 8개월을 안 해본 검사 없이 다 받고 기다려서 수술을 한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와우이식이나 해 볼까해서 쉽게 결정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기록을 남기면서 가는 아이입니다. 한 번 기회를 주세요. 지난 교육구에선 이 서비스를 다 해주었습니다. 그만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이쪽 교육구에서 선생님을 찾지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AVT 선생님이 이 근처 50마일 안에서 6명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지난 일년간 승욱이의 AVT 선생님이었던 분과 다시 연결해주세요. 네?”
S씨 변론이 시작되었다. 교육구 예산이 어쩌구, 저쩌구 이렇게 서비스를 해주면 다른 애들도 난리가 어쩌구, 저쩌구.
“S씨, 저에게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이전의 교육구에서도 똑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S씨 모든 일에는 처음이란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 처음으로 시도하지 않으면 어느 것도 발전 할수 없습니다.”
내말이 끝나기 무섭게 승욱이 학교 선생님들이 드디어 거들기 시작했다. “해 봅시다. 그렇게 해 줍시다.”
S씨가 들고 있는 펜이 파르르 떨리더니 “좋습니다. 그럼 6개월만 AVT 교육을 연결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교육구에서 순회 스피치 선생님을 일주일에 두 번 보내주고 또 학교에서 상주하는 스피치 선생님을 일주일에 두 번 연결시켜 주겠습니다. 이상입니다.”
S씨는 말을 마치더니 다음 미팅 약속이 있다고 서둘러 방을 나갔다. 시간을 보니 우리의 미팅이 장장 5시간을 달리고 있었다.
S씨가 미팅 룸에서 나간 후에 방에선 다들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스피치 서비스를 다 받을 수 있었지? 우리 교육구에선 불가능한 일이야.”
“불가능한 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일어납니다. 가능한 일을 만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고요한 외침은 계속 됩니다. 승욱이 때문에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만들어가는 거죠.”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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