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LA 온누리교회 부부 세미나 가 보니…

2007-08-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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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올해로 9년째 50쌍 참석… 울고 웃으며 열띤 토론
나이·결혼연차 천차만별 커플들 묻어뒀던 갈등 술술

오래 전 연애편지를 꺼내 보는 심정이 이러 하려나.
분명 설레지만 어쩐지 어색하고, 낯설고 언뜻 차가운 민망함의 기운마저 감돈다. 그 동안 십 수년 살 맞대고 살았지만 아내도 몰랐던 남편, 혹은 남편도 몰랐던 아내와 마주 앉는 순간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얼얼하지만 정신이 번쩍 든다.
억겁의 인연을 쌓아 지상에서 부부라는 이름의 길동무로 만난 이들. 소설과 드라마에 수천 수만의 주제와 소재를 제공해온 이들 부부가 이 오래되고 케케묵은 고전적 주제를 틀어쥐고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LA 온누리교회(담임 목사 유진소)가 하시엔다 인근 한 호텔서 주최한 2박3일간의 부부세미나에 50여쌍의 부부들이 모여들었다.
진지하고 치열하게 부부간의 마음을 나눈 이 특별한 모임을 동행 취재했다.
그 동안 사느라 바빠, 자녀들 키우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뒀던 부부만의 갈등을 푸는 모습은 진지했지만 유쾌했다.


■어떤 부부들 모였나
올해로 9년째를 맞는 부부 세미나는 문제가 심각한 부부들이 모이는 ‘문제해결 세미나’가 아니라 부부라면 누구나 겪는 소소한 일상의 문제를,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부부간의 갈등을 미리미리 알고 대처하자는 취지가 훨씬 더 큰 모임이다.
이 모임을 첫해부터 담당해 온 강숭철 목사는 “이혼 위기까지 간다거나 너무 갈등이 심한 부부들이라면 오히려 전문적 상담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며 “이 행사는 평범한 부부들이 모여 일상 속 부부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 보자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세미나는 행사 주최 교인들뿐 아니라 외부에도 적극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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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밤 열린 부부 세미나 파티에서 수트와 드레스로 차려입은 부부들이 파티장에 입장하기 전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세미나 강사로 참석한 유진소 목사와 유미은 사모, 한승진·최지영, 김익현·김혜경 부부.

‘용서의 잔’나누고 결혼 언약식도

점점 빛 잃어가는 생활에 광 내려 참석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소중함 확인

그러다 보니 연령층도 결혼 연차도 천차만별. 깨가 쏟아질 게 확실한 신혼 부부부터, 결혼 40주년을 이번 행사에서 맞은 노부부, 이제 막 재혼해 새로운 인생을 엮어 가는 이들, 이혼결심이라는 결혼생활 ‘막장’까지 경험했다 마지막 용기를 내 행사에 참석했다는 10년 차 부부들에 이르기까지 그 결혼의 연륜만큼이나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자리를 채웠다.
물론 지금도 무탈하게 잘 살고 있지만 ‘공부하는 심정’으로 점점 빛을 잃어 가는 결혼생활에 광을 내보겠다고 온 이들이 훨씬 더 많았다.
여기에 ‘아무 문제도 없는데 자꾸 아내가 가자고 해서’ ‘한번 참석해 보면 좋을 듯 싶어서’와 같은 이유를 대는 ‘무목적 형’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런 이들일수록 시간이 갈수록 ‘적극 모드’로 돌변해 참석자들을 즐겁게 했다.

■행사 어떻게 진행됐나
스케줄은 생각보다 빡빡했다. 어차피 먹고 놀기 위해 바쁜 이민생활의 금쪽 같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 아니기에 도착과 함께 바로 세미나에 돌입했다. 첫날 오후 4시에 도착해 이날 밤 11시가 넘도록 강사들의 열띤 강의와 토의로 컨퍼런스 룸은 후끈 달아올랐다.
다음날 일정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하루 내내 ‘잘 마치는 부부의 삶’ ‘부부간의 대화법’ 등을 주제로 한 강의와 토의가 이어졌다. 특히 ‘부부간 성적 친밀감’이라는 주제가 눈길을 끌었다. 부부가 살면서 겪는 여러 문제들 중 하나일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참석자들은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다른 부부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면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아갔다.
그러나 이날 저녁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포멀 파티. 이틀간 강행군을 해왔던 부부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파티에서 참석자들은 턱시도와 드레스로 성장을 하고 말 그대로의 파티 그 자체를 즐겼다. 마지막 날은 그 동안의 강의와 토의를 바탕으로 부부간의 용서의 잔을 나누는 순서와 언약 결혼식이 이어졌다. 언약 결혼식 이후엔 비슷한 연배의 부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부부간의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그룹 미팅이 이어졌고 이 자리에선 박장대소와 눈물이 넘쳐흘러 2박 3일간의 일정의 대미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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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세미나 마지막 날인 5일 참석자들이 그간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그룹미팅을 하면서 즐겁게 웃고 있다.


<부부싸움 잘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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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때는>
①내말을 해라=남이 뭐라고 했다든지 제 3자의 의견이 아닌 명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②짧게 말하라=구구절절하게 이야기가 늘어지다보면 본인도 혹은 듣는 사람도 뭘 말하려고 하는지 헷갈리게 된다.
③상대방에게 리바이벌의 시간을 줄 것=아내나 남편이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 요점만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들을 때는>
①맞장구를 쳐라=‘오, 그랬어?’ ‘그랬구나’와 같이 상대방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음을 알려라. 강 목사에 따르면 이 맞장구만 잘 쳐도 부부관계가 개선된다고.
②에너지 레벨을 맞춘다=상대방이 열받아서 쏘아 부치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큰둥하게 반응하면 싸움의 주제는 사라지고 상대방의 그 미지근한 태도에 더 열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상대방이 화가 나있을 때는 듣는 사람도 그 만큼의 에너지 수위를 맞쳐주는 것이 좋다.
③충분히 공감하고 있음을 보인다.
④요점을 반복해 들려준다=상대방이 얘기한 것을 다시 재차 확인해 삼천포로 빠지는 대화가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늙으니 서로의 존재 귀한 줄 깨달아”

결혼 40주년 오영방(70)·메이 오(62)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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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40주년을 맞은 오영방·메이 오씨 부부가 행사가 열린 호텔 로비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백년해로에서 절반 가까이 달려온 40주년. 인간사 불혹의 나이인 40주년이면 이들 부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을까. 아니면 나약한 인간들이 피해갈 수 없듯 바람에 흔들리고 풍파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걸까.
이에 대해 오씨 부부는 “이쯤 살면 농익은 사랑이 주는 행복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고 아직 그 시간을 지나지 않은 젊은 기자에게 설명한다.
“젊었을 때는 애 키우고 비즈니스 하랴 정신없었죠. 어디 부부간의 정을 제대로 알고 느낄 시간적 여유가 있었나요. 이제 은퇴하고 부부가 24시간 함께 있다보니 오히려 젊은 시절보다 더 새록새록 더 서로의 존재가 귀한 줄 알게 되더군요.”(오영방)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오는 사랑이나 이해가 존재할 수 없듯 이들 부부 역시 지금껏 서로 노력하고 존중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잉꼬 부부라고 왜 안 싸우겠어요. 게다가 함께 있는 시간이 늘다보니 예전보다 더 싸우죠. 그래도 이젠 저 남자 나 아니면 안되지 싶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요. 지금껏 남편의 사랑으로 자신감 갖고 살아왔으니 이젠 내가 져주며 살아야지 싶어요.(웃음)”(메이 오)
행사가 진행되던 3일 결혼 40주년을 맞아 참석자들로부터 열렬한 축하파티를 선물로 받은 이들 부부는 “앞으로도 지금껏처럼 좋은 길동무로 마지막 그날까지 행복하게 지낼 것”이라며 슬그머니 서로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환하게 웃는다. 세상 그 어떤 미소보다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미소다.

“부부간엔 따지기보다 무조건 믿어라”

김동환(45)·상숙(44)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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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상숙씨 부부는 행복한 결혼의 조건으로 서로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이해를 꼽았다.

타인의 시선은 물론 본인들 스스로도 이 정도면 결혼 15년간 별문제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했단다. 결혼연차가 더해가면서 좀 관계가 소홀해지는 듯도 싶었지만 자녀 키우며 사는 부부들이 다 그러할 것이라 믿어 무시했다.
“남편은 1.5세라 그런지 부부 중심적 사고가 강해요. 애들보다 부부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죠. 그런데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 교육하랴 뒷바라지하랴 내 입장에선 남편과의 관계까지 신경 쓸 틈이 없던 거죠. 그런데 이번 행사에 참석하고 나서 아이들 문제로 소소하게 티격태격하면서, 나름의 내 교육방법을 남편이 인정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마음이 문이 닫혀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별문제 없는 듯 보였지만 어느 순간 서로에 대해 깊은 마음의 벽이 있었던 셈이죠.”
그래서 이들 부부는 짧은 세미나 기간 어디서 잘못된 건지, 서로가 원하는 사랑의 표현이나 방법은 무엇인지 집중 탐구했단다.
“사랑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내는 나에게 인정받는 것을 사랑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그걸 못해 준 거죠. 그리고 아내의 자녀 교육법에 대해 옳다 나쁘다만 말할 줄 알았지 아내가 도움을 원할 때 잘 도와주지 못한 것도 아내에게 상처가 된 것 같네요. 부부간엔 옳고 그름 이전에 서로를 한없이 믿고 지원해 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마 사랑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 맞는 것 같다.

글 이주현 기자, 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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