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승욱이같은 자녀가 있나요?(상)

2007-08-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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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승욱이 학교에 도착했다. 오늘 함께 IEP(장애아의 개별 학습계획)미팅에 통역을 맡아주실 분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몇달전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분이라 좀 편하게 오늘 제일 중요하게 나눠야 할 부분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미팅룸으로 들어서니 아직 선생님들이 다 도착을 하지 않은 상태다. 나와 마주 앉은 백인 여자분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
“LA통합 교육구에서 온 S라고 합니다. 청각장애아동을 담당하는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 S와 힘 겨루기를 해야하는 난 그녀의 당당함에 벌써부터 주눅이 들었다.
오늘의 미팅은 세 번이나 미뤄졌었고, 승욱이가 학교에 입학한지 석 달만에 하는 미팅이다. 엄마인 나의 진을 다 뽑고 자포자기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는 미팅인 만큼 부담스러운 자리이기도 하다. 오늘 미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승욱이의 AVT(와우이식 전문 스피치 선생님)을 연결하는 것에 있다.
이른 새벽 미팅에 참석하러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분명 교육구에서는 많은 비용이 드는 AVT 서비스를 해 주지 않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야 하는지를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왔다. 두 시간동안 생각을 했지만 뾰족한 방법도 좋은 아이디어도 없다.
교감선생님인 엘리가 방에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미팅으로 이어져 나갔다.
학교선생님들의 보고가 대충 끝나고 가장 중요한 안건인 승욱이 스피치 선생님에 대한 교육구에서 나온 S의 보고가 시작되었다. 역시나 S의 보고서는 평균이하의 수준으로 승욱이에 대한 의견을 내 놓았고 그러기에 교육구에서 해줄 수 있는 서비스는 일주일에 30분씩 두 번 청각장애 아동을 위한 스피치 교육만이 서비스를 해주겠다는 거의 통보에 가까운 말을 나에게 던졌다.
S는 지난 두 달간 두 번을 학교에 와서 승욱이를 봤지만 전혀 듣는 것에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과 AVT교육이나 일반 스피치 교육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들어서 AVT서비스를 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대세는 완전 기울어진 것 같다. 동네 교육구도 아닌 LA통합 교육구 디렉터는 꽤 높은 사람인지 그녀 앞에서 교감선생님도 별로 대꾸도 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내 편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순 없는 법, 이제 1학년인 아이를 이렇게 꺾어 놓다니.
작은 목소리로 “이 말씀은 드려야겠습니다” 이 말에 쳐다보는 사람은 고작 두 명, 좀더 큰 목소리로 “할 말이 있습니다” 난 통역을 부탁해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모두가 준비해 오신 자료는 잘 보았습니다. 너무 수고하셨고, 우리아이를 잘 봐 주신 것 같아 엄마로써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모두들 얼굴이 뿌듯하게 날 쳐다보고 있다.
“이곳에 모인 분들은 승욱이를 교육시키기 위해 모인 분들인 걸 압니다. 그러기에 말씀 드리는 겁니다. 왜 AVT서비스가 안되는지 저에게 다시 설명해 주세요.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네 압니다. 전 이곳에 변호사와 함께 올 경제적 능력도 되지 않고, 7년 전 이민 와서 여러분처럼 영어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LA통합교육구에서 서비스를 받지 못할 거라고 사람들에게 조롱과 비웃음도 당했습니다. 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얼마전 UCLA에서 있었던 청력검사 결과가 너무 좋았고 청력사는 AVT교육은 꼭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의 생각지도 않은 말에 S는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난리가 났다.
‘S씨, 당신에게 승욱이 같은 자녀가 있나요? 당신이 생각하는 전 그렇게 만만한 엄마가 아닙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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