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유한 은퇴 자 들 “다운타운이 좋아”

2007-05-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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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주거·도우미 및 간호 서비스 통합된
‘양로 콤플렉스’ 전국 대도시에 속속 건설
밀리언 달러 입주비에 월 수수료 높지만
양로 서비스 받고 품위 있는 활동적 삶 매력

노인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육신이 건강하고 정신이 맑을 때는 혼자 살 수 있지만 늙고 병들었을 때 옆에 아무도 없다면 난감하다. 늙으면 병들고 기력이 떨어지게 마련. 자식들은 커서 떠나가고 홀로 남은 노인이 됐을 때 누군가 옆에 있어 간병도 해주고 끼니도 거르지 않게 챙겨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인들의 주거와 일상생활 도움, 간병, 간호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주거형태가 대도시 한복판에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름하여 컨티뉴잉 케어 은퇴 커뮤니티(CCRC: continuing-care retirem ent community). 우리말로는 양로 단지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노인들의 독립된 주거 공간과 각종 노인 도우미 및 간호 서비스가 통합된 빌딩군(complex)이라고 보면 된다.
부모를 자식이 같이 살며 모시기 어려운 미국에서 이런 주거형태는 부유한 노인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
워싱턴의 한 라디오방송 그룹 회장으로 지내다 16년 전 은퇴한 딕 해리스(77) 노인. 그는 은퇴 후 바로 따뜻하고 경치 좋은 플로리다 사라소타로 날아가 살았으나 조만간 다시 대도시로 돌아갈 계획이다. 이유는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은퇴촌의 무료함이 싫어서다. 그가 새로 둥지를 틀 곳은 시카고 인근 골드 코스트의 럭서리 고층 아파트인 ‘워터타워’내 클레어 CCRC. 가까이 유명한 아트 갤러리가 있어 걸어갈 수 있는 등 활동적이며 문화적인 삶이 가능하다. 해리스 노인은 “이것이 바로 건강한 삶”이라고 믿는다.
1980년대 초반 선보이기 시작한 양로 콤플렉스는 대부분 서너 개 빌딩으로 구성된 커뮤니티로 요양에 적합하도록 주로 교외 또는 전원 환경에 설립됐다. 1980년대 당시는 274개였으나 2005년에는 2,240개로 그 수가 크게 늘어났다.
수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점점 대도시 안으로 들어오는 추세다. 도시의 편리함과 활력, 문화시설이 돈많은 노인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대도시 내에 CCRC는 지금까지는 80년대에 지어진 30여개 뿐이었으나 현재 약 15개의 현대식 CCRC가 계획 또는 건설 중이어서 주목된다.
샌프란시스코와 필라델피아, 보스턴에 이런 양로 콤플렉스가 있고 뉴욕에는 처음으로 10층짜리 ‘스카이라인 코먼스’가 퀸스 자메이카에 들어선다. 2008년 완공 예정인데 호텔 스타일의 시설에 서비스로 새로운 명소가 될 전망이다. 입주 수수료(entry fee)와 월 수수료가 아주 고가이지만 돈 많고 활동적인 은퇴자들에게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
달라스에서는 ‘클래식 레지던스’가 도심 CCRC로서는 처음으로 내년에 건설된다. 지난해에는 비영리기관인 퍼시픽 은퇴 서비스가 시애틀에 CCRC인 ‘미라벨라’를 착공했는데 독립 주거 아파트 289 유닛과 양로 주거(assisted living) 32유닛,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한 기억 간호 스윗 32개 유닛으로 건설된다. 수영장과 식당 4개, 아트 스튜디오, 300석 규모의 극장도 포함돼 있다. 몇 블걱 인근에 홀 푸즈 마켓, 코너스 예술대학이 있고 연예 샤핑 지구가 가까이 있어 걸어갈 수 있다. 노인들이 각종 생활 의료 서비스 도움을 받으며 활동적이며 문화적인 삶을 사는데 완벽한 환경이다.
“요즘 바이어들은 전원의 삶을 원치 않는다. 에너지 넘치는 도시를 원한다”고 한 관계자는 말한다.
CCRC는 고급 콘도와 비슷하지만 소재한 주에 따라서는 보험 또는 의료 상품으로 간주돼 비슷한 규제를 받는다. 간호사 및 의료 시설 등 면허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며 원활한 서비스 제공을 위한 재정적 감독도 받는다.
건설도 일반 아파트와는 다르다. 불편한 노인들이 용이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통로, 엘리베이트 배치 등이 다른데 클레어 설계 건축가인 폴 도날드슨은 “교외 캠퍼스 스타일과 달리 고층 CCRC는 수직적 통합돼 있다”며 “의료기관 시설기준이 주거 모델에 합리적으로 녹아 들게 설계돼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거주 비용은 CCRC마다 천차만별이다. 한 CCRC를 보고 다른 곳도 비슷할 것이라고 추정하면 오산이다.
해리스 노인 부부가 입주하는 로욜라 대학 캠퍼스 소재 ‘클레어’는 미시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44층의 1,700스퀘어피트 유닛. 입주 수수료(entry fee)가 100만달러이며 매달 월 수수료로 5,000 달러를 내야한다. 월수수료에는 1일 1식, 메이드 서비스, 유틸리티가 포함돼 있다. 입주수수료의 90%는 이주시 환불받는다.
전직 파일럿인 69세 노인 데이빗 렌스볼트는 시애틀의 ‘미라벨라’의 69만1,000 달러짜리 2베드룸 독립 거주 아파트(independent-living)를 예약했다. 월 수수료는 4,200달러. 미라벨라에서는 장기 간호(long-term care)로 넘어가면 월수수료 대신 하루 130달러를 내게 되며 입주 수수료의 90%는 환불 가능하다. 렌스볼트는 “활동적인 삶을 추구하는 노인이라면 빨리 옮기는 것이 낫다. 무료한 노인네들과 어울려 브리지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부유한 노인들을 위한 콤플렉스가 도심에 속속 들어서면서 대도시 도심의 풍경도 크게 변모하는 중이다.
60대중반의 신경외과의 필립 윌리엄스. 그는 평생을 달러스 교외 대저택에서 살았지만 최근 하이야 트 클래식 레지던스 2배드룸 유닛을 예약했다. 이곳의 입주수수료는 40만 달러에서 170만달러선. 월수수료는 3,300달러에서 7,000달러이며 입주수수료의 90%는 환불가능하다.
이곳으로 옮겨가면 윌리엄스 부부는 하이킹 자전거 코스인 캐티 트레일에서 매일 운동하고 고급 스테이크 하우스 ‘닉 샘스’로 가 맛있는 고기도 먹을 생각이다. “간편하면서도 품위 있는 생활이 좋다”고 그는 자못 들떠 있다.

<케빈 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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