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소 가락 등에 한국적 정서와 풍류 담아내
영화 서편제와 설정 비슷하지만 주제는 달라
임권택 감독은, 이름 석자만으로 위대하다. 임 감독과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은, 우선 그가 용맹정진하면서 만들어낸 한국 영화계의 일가(一家)에 칭송을 보낸다.
“60년대에 만든 작품은 생각하기 싫다”는 임 감독의 고백과 스스로 첫 작품이라 부르는 73년 영화 <잡초> 이후 메가폰을 잡은 영화를 감안하더라도 가히 금자탑을 쌓은 인물이다.
4월12일 개봉되는 영화 <천년학>으로 100번째 메가폰을 잡은 감독이라는 전무후무한 이정표를 쌓은, 한국 영화계의 산증인이다.
93년작인 영화 <서편제>로 이른바 ‘한류’란 한국적인 정서와 전통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점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최근 서울 삼성동에서 임권택 감독의 요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칫 제작이 되지 못할 뻔한 영화를 내놓는 기분은.
=하필이면 100번째 영화가 이런 일을 겪었나?(웃음) 정일성 감독, 조재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열매를 맺게 됐다. 그들에게 감사한다.
▲<서편제>와 영화 설정이 비슷한데.
=가장 염려되는 게 바로 그 부분이다. <서편제>의 아류라고 부르지 않을까 염려됐다. <서편제>를 물려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서편제>를 안보고도 충분히 독립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서편제>가 소리로 승화된 한을 다뤘다면 <천년학>은 소리로 말하는 사랑을 그렸는데.
=소리 뿐 아니라 해금 태평소 대금 등 한국 악기도 많이 사용됐다. 남녀가 서로 찾고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할 때마다 태평소가 아스라이 들리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과 드러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랑의 감정, 그리고 한국의 소리와 음악이 잘 조화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원작자인 <선학동 나그네>의 이청준 작가의 손길도 영화에 담겼다는데.
=이청준 작가가 거의 촬영 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내가 영상으로 말하는 것과 이청준 작가가 글로 표현하는 것이 다르다.
가끔 이청준 작가가 제안한 대사를 내가 도저히 흉내내지 못할 것 같아 많이 사용했다. 단어 선택, 언어 구성 등 그 양반이 아니면 안될 대목이 많았다.
▲<서편제>에서 언덕을 내려오면서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천년학>에서 기대되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이든 다 정성이 깃들었다. 굳이 꼽으라면 조재현과 오정해가 제주도에서 호흡을 맞춘 장면이다. 떠나는 조재현을 보내면서 오정해가 <춘향전>의 한 대목 <갈까보다>를 부르는 대목이다.
오정해의 소리와 조재현이 북도 없이 손으로 장단을 맞추는 장면으로 연인의 감정이 교차하는 정서와 한국적 풍류를 담아내려고 했다.
▲전작에서 김수철, 신중현 등 뮤지션에 이어 이번에는 양방언이 음악감독으로 나섰는데.
=일본에서 산다고 해서 한국적인 정서에 맞지 않을까 걱정했다. 우리 악기를 기본으로 서양음악을 조화시켰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오정해의 추천으로 작업을 함께 했는데 크로스오버를 전공한 이라 음악적인 깊이와 폭이 다양했다.
▲이젠 또 다른 작품을 준비할 때인데, 101번째 영화는 기획하고 계신지.
=초기 작품은 꼴도 보기 싫다. 하지만 100편째라는 커리어가 주는 부담도 상당하다. 내 입장에선 굉장한 압력이다.
그냥 영화를 만들었을 뿐인데 주위에서 100편째라는 걸 자꾸 상기시키더라.(웃음) 만들고 실망하고, 또 만들고 실망하겠지만 노력하고 있다는 자체가 행복하다.
고규대 기자 enter@sportshankook.co.kr